한줄 詩

엄마의 태양계 - 피재현

마루안 2021. 4. 15. 22:05

 

 

엄마의 태양계 - 피재현


엄마 방에는 여섯 명의 환자들이 있다
여섯 명의 평균연령은 대략 88세쯤
팔십하나 엄마가 평균을 많이 깎아먹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으니
엄마의 요양원은 소멸해 가는 별들의 태양계
늙은 별들이 사라지고 샛별 대신
다른 은하계 낡은 별들의 이주로 채워지는
유배의 태양계
이 태양계는 유난히 유성이 많아 남은 별들은
궤도를 이탈해 떠나간 어제의 유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러는 유성이 되고 싶어도 하고
엄마는 아직도 외계의 존재를 믿으며 밤마다
우주복을 깁는다
엄마가 꿈꾸는 외계는 깨꽃이 피고 냉이가 지천이며
하루 들에 나가 일을 하면 오만 원을 주는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다
나는 그 외계에서 우주선을 타고 엄마를 만나러
부실한 태양계에 자주 진입하지만
내 우주선은 일 인승이라 엄마가 탈 자리는
없을 뿐더러
꿀과 젖이 흐르는 외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FBI처럼 엄마를 바보로 만든다
엄마 방에는 외계의 있음을 믿지 않는 다섯 명이
내가 다녀가면 엄마를 앉혀 놓고 외계 따윈 없다고
도대체 하느님을 본 사람이 누구냐고
제발 정신 차리라고 엄마를 윽박지른다

엄마는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시집/ 원더우먼 윤채선/ 걷는사람

 

 

 

 

 

 

봄바람처럼 - 피재현


아주 잠깐 사이 풍을 맞아
말씀이 어눌해진 엄마를 병실에 눕혀 놓고
수발드는 봄날

나물국에 밥 말아 먹은 엄마는
입가에 이팝꽃처럼 붙은 밥알도 떼어 내기 전에
약을 찾고
혈압약, 뇌경색약, 우울증약
인사돌, 영양제, 변비약까지 한 손바닥
가득 쌓인 약 알갱이
두 번에 나눠 삼킨다

내가 빨리 죽어야 니가 고생을 않을 텐데
말로만 그러고 죽을까 봐 겁나서
꽃잎 삼키듯 약을 삼킨다

병실 창밖 한티재에는 산살구꽃도 지고
마구마구 신록이 돋아나는데
엄마가 오래오래 살면 어쩌나
봄꽃 지듯 덜컥 죽으면 어쩌나

내 마음이 꼭 봄바람처럼
지 맘대로 분다

 

 

 

# 피재현 시인은 1967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99년 계간 <사람의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우는 시간>, <원더우먼 윤채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