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편으로 - 이규리

마루안 2021. 4. 9. 21:25

 

 

불편으로 - 이규리


불빛을 좀 낮춰주세요

내가 아프니 그들이 친절해졌는데요

그러지 말아요
아픔을 가져가지 말아요

만나는 사람들 저마다
상처받았다 받았다 하니
상처가 사탕인가 해요

태생들은 불편이었을까요

불편을 들이며 그만한 친구도 없다 생각했는데
이게 그거
별일 아니라는 듯
별이라 불러보려 했는데

그 별 다치게 한다면 멀게 한다면

일찍 늙어버린 사람
마치 그러기를 바란 사람처럼
별과 별 사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다고 그랬을까요

손톱에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한 생각을 물어뜯도록

괜찮아요 절룩이며
여기 남을게요

불편이 당신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끌 수 있다면
별을 헤듯

그래요 여기 남아서 말이죠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역류성 식도염 - 이규리


뭔가 하면 할수록 비천해갔다

밤의 이야기들은 어디에서 역류하였을까

누추한 일은
사라지지 않고 남으려는 몸
물이 물 아닌 시름

내 슬픔의 경로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인데

살아 자주 역류했다
당신이
관념이
아름다움이

세상모르고 거기 있을 때
서러운 풍경은 모이거나 흩어졌고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문과 문 사이에서 앞날을 흔들어 보기도 했으나

거꾸로 서서 내일을 본 적 있니
웃어본 적 있니

물구나무서서 보는 일은 좀 괜찮았는데

무언가 잘 안 되어 생이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면
모쪼록
이것도 역설의 방식이라 하면 안 될까

나도 내가 아닌 곳으로 흐른 때가 많았으니

너무 오래되었다면 그리 두어라

긴 밤이여 솟구쳐 흘러라

 



 

# 이규리 시인은 경북 문경 출생으로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당신은 첫눈입니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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