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모든 일상이 엉망이다. 아무리 방역수칙을 잘 지킨다고 해도 영화관 나들이마저 눈치가 보인다. 철 없이 이 시국에 무슨 극장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을 피해 가능한 이른 시간에 갔다. 조조는 할인도 되고 관객도 많지 않아 일석이조다.
진우(강길우)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 목장에서 일한다. 중만(기주봉)이 운영하는 소와 양을 기르는 목장이다. 진우는 목장 주인은 물론 그 동네 주민들에게 성실한 젊은이로 인정을 받는다. 다섯 살인 딸 하나를 데리고 살지만 사실은 친딸이 아니라 조카다.
어느 날 진우의 친구 현민(홍경)이 목장으로 찾아온다. 현민은 길우의 동성 애인으로 시인이다. 둘은 화가와 시인으로 만나 연인이 되었다. 오랜 만에 만나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현민은 화천의 성당에서 운영하는 시쓰기 교실에 강사로 채용된다.
나름 평화롭던 어느 날 은영(이상희)이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진우의 쌍둥이 여동생이자 조카 설의 친엄마다. 그림을 그리던 진우에게 한 달만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지금까지 연락을 끊은 것이다. 새로운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린 후 딸을 데리러 왔다.
치매에 걸린 중만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긴다. 은영으로 인해 길우와 현민의 관계가 밝혀지고 평화롭던 목장은 반전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화천의 아름다운 가을을 배경으로 마지막 장면에서야 처음 음악이 나온다. 슬픈 첼로 선율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박근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박은지의 시 <정말 먼 곳>에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의 장편 데뷰작인 <한강에게>도 시인이 주인공이었다. 그 영화에서 시인의 오랜 연인으로 강길우가 나온다. 정말 먼 곳은 벼랑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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