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동자동 사람들 - 정택진

마루안 2021. 3. 26. 22:11

 

 

 

서울 토박이들도 서울 도심에 있는 동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행정동명은 그런대로 알고 있어도 법정동명은 이런 동네도 있었나 할 정도로 아리송한 동들이 많다. 수시로 서울 도심을 걷는 편인데 걷다 보면 듣도 보도 못한 동 이름이 꽤 된다.

 

북촌 근처에 있는 팔판동, 소격동, 체부동, 을지로 부근의 산림동, 입정동, 예관동, 서울역에서 가까운 서계동, 문배동 등이다. 용산구에 속한 동자동도 마찬가지로 서울역 맞은 편에 있으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동자동은 종로 3가와 함께 예전에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 집창촌이었다. 서울역과 남대문 시장이 가까워서 나그네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에 좋은 위치다. 성매매 단속으로 윤락업소가 떠난 자리에 노동자들의 값싼 숙소로 이용되었다.

 

현재 동자동은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으로 자리를 잡았다. 동자동 전체가 아니고 일부가 쪽방촌이다. 오래된 건물에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좁은 방들이 정말 쪽방들이다. 방안에까지 들어가 보진 않았으나 쪽방촌에 관심이 있어서 그 골목을 여러 번 갔었다. 이 책을 읽기 훨씬 전이다.

 

<동자동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엔 소설인 줄 알았다. 젊은 인류학자 정택진이 쓴 르포집이다. 저자가 한동안 그곳을 드나들며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정서를 탐색한 책이다. 가난을 구경할 필요는 없으나 관심은 가져야 한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관악산 아래 난곡동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이곳 또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여서 나도 수시로 갔던 곳이다. 달동네라고 인정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그곳 사람들 특유의 적대감이 느껴졌다. 사진 찍는다며 몰려 다니는 몰상식한 외지인 때문이라고 했다.

 

동자동 사람들 또한 외지인을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아 갈 때마다 조심스럽다. 가능한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복장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구경꾼처럼 기웃거리고 다니면 뭔 구경 났냐는 타박을 듣기 십상이다. 실제 카메라 들고 있는 젊은 청년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주민을 본 적이 있다.

 

정택진은 그곳 사람들과 섞이면서 이 책을 썼다. 쪽방촌 사람들의 일상은 물론 그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 쪽방촌엔 유난히 고독사가 많다. 부실한 식사에다 술 담배를 즐기고 질병이 있어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홀로 세상을 떠난다.

 

자기 인생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탓일까. 그곳 사람들은 자기 몸을 너무 막 다룬다. 지병 때문에 아님 근로 의욕이 없어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오랜 기간 가족과 단절되어 있거나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쉽게 치유가 되지 않는다.

 

그곳 사람들도 끼리끼리 연대를 하거나 서로 기생하는 관계도 있다. 가족과 단절된 사람끼리 의지하거나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고 추모하기도 한다. 살아서 외로웠으니 죽어서까지 외롭게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일까. 그들도 사람이고  동자동에도 사람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