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누군가 부르는 내 이름이 - 김유미

마루안 2021. 3. 16. 21:46

 

 

누군가 부르는 내 이름이 - 김유미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낯선 이름 하나가 귓가를 스쳐 간다

이름은 한 사람으로 다가와서 다중으로 사라졌다

 

이름을 벗기면

돌아가는 어지럼증이 되었다

혼자서 가다가 뜨거워져서 우는 낯섦 같았다

 

헛바퀴가 되어 주저앉는 이름

부르는 이름이 내 이름인지도 모르고

불쑥 손을 내밀어 잡아 주고 싶었다

 

이럴 때 이름이

내 말을 잘 들어 먹는 명사 같구나

생각한다면

어딘가에 세워 둔 우산의 기다림에

어딘가에 새겨 놓은 마음의 이면에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두 귀만 남아

몸만 일어서면

이름은 비척비척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집/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 파란출판

 

 

 

 

 

 

술래 - 김유미

 

 

빛들이 눈을 쪼아 빠져나가는 증세

의사는 빛의 부리를 뽑는다는 약들을 처방해 주었다

 

한 달째 밤이 지속되고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새에 몰두하는데

내게서 멀어지고 싶은 것들이 늘어난다

 

슬플 때마다 뼈를 현처럼 뜯던 통증이

고독의 휘파람을 불던 기다림이

접질린 발목으로 멀리멀리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친구와 다투다 우는 아이의 울음도 그 자리 그곳을 벗어나고픈 새의 윤곽

 

모두 어디로 떠나가는 날들

 

더듬더듬 밥을 먹고 더듬더듬 세수를 하고

돌아와 주문을 외워도

기다리는 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독해되지 않는 내용물들이 전자레인지 속에서 해동되었으나

새가 되지는 않았다

 

누구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일까

자꾸만 눈을 밀고 나가는 것들은

 

 

 

 

# 김유미 시인은 전남 신안 출생으로 2014년 <시와 반시>로 등단했다.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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