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울음이 길고 붉다 - 김유석

마루안 2021. 3. 11. 19:51

 

 

울음이 길고 붉다 - 김유석

 

 

는개는 적시는 몸이 붉다. 는개는 내려온 허공을 바닥으로 바꾸어 몸에 두르는 울음이 붉다.

 

밟히면 꿈틀하는 것은 몸이 아닌 울음.

 

늘였다 줄였다, 주름으로 이룬 것들의 몸은 길다. 제 살보다 무른 데만 뒷걸음질 치듯 짚어가는 그것의 울음도 가지런하게 길다.

 

일획의 생, 머리에서 꼬리까지 땋는 길이 허공보다 아득하여

 

는개는 오는 날은 길고 붉은 것들이 공중에서 기어 나와 운다. 지르렁 무지르렁, 묽은 초저녁 뒤안을 자기공명하며 저렇게.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 상상인

 

 

 

 

 

 

울음주머니 - 김유석

 

 

애비도 모를 씨 사람 손에 받아와서

사산한 새끼

눈 뒤집고 핥아대는 어미 소.

 

몸에서 함석 두레박 내리는 소리 같은 게 샌다.

 

이미 죽은 줄

뱃속에서부터 알았지만

그런 짓밖에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살집 속엔 오래 퍼 올리지 않은 우물이 고여 있다.

 

팅팅 분 젖처럼

터지지 않는 울음 대신

거친 숨소리만 새끼 몸에 불어넣는 어미.

 

서너 배 새끼 받고 가는 일이 전부인 생에

 

고름처럼 굳어서

무게로 얹히는 울음주머니가

저 몸 어딘가 달려 있기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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