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는 보수 중이다 - 정선희

마루안 2021. 3. 8. 21:45

 


나는 보수 중이다 - 정선희


한 달 전에도 두 달 전에도 
여전히 옆집은 보수 중이다

1층과 2층을 분리해야 해요
집안으로 난 계단을 없애고 밖으로 계단을 새로 만드세요
각자의 대문을 갖는 게 좋아요
커다란 통유리로 거실을 마당까지 확장해 보세요

이 사람 저 사람의 충고를 들으며 집은 점점 복잡해졌다
아직까지 집은 완성되지 않았다

 

남자가 내게 물었다 새 여자를 들이는 게 나을까요? 애들 엄마를 받아들이는 게 나을까요? 애들 엄마는 아이 셋을 두고 바람 많은 5월의 녹색을 따라 집을 나갔다 새 여자는 남자의 행복을 위해 밥을 한다는 여자였다 나는 낡은 집은 싹 허물고 새로 짓는 게 낫다고 했다 나는 어때요?

남자는 빤히 나룰 올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나를 보수 중이다


*시집/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상상인

 

 

 

 

 

 

난센스 - 정선희


이 악물고 살았니?

그가 나의 앞니를 가리킨다
의아해 거울을 보니 아래쪽 앞니가 유치처럼 닳아 있다

질긴 날들이 많았나 봐

이렇게 가까이서 슬픔에게 나를 들키고 있구나
뜨거운 국물이 안개처럼 나의 표정을 지웠다
부스럭대며 아무리 숨겨도
밥을 먹는 동안 나를 비추는 거울이 지워지지 않았다

올라가면 푸른 하늘 내려오면 밑바닥, 눈치를 보며 시소를 타는 내가 보인다

저게 나란 말이지?

지나온 계절을 설명할 필요는 없지
어떤 식으로 남든

맞아, 나



 

*시인의 말

그래서 이제 말하려 해
심장까지 다다르는 동안 사라지지 않는 시간이
어떤 너이며
어떻게 눈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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