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인간 없는 세상 - 앨런 와이즈먼

마루안 2021. 2. 22. 22:10

 

 

 

오래 전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다. 미뤘다가 놓쳐버린 책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제야 읽었다. 코로나 때문에 일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고 가능한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부터 책 읽는 시간이 늘었다.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면서 무기력해질 때가 있지만 그나마 책이 있어서 다행이다. 툭 하면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배낭을 챙겼던 날들이 까마득하다. 죽자사자 간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만서도 방역수칙이 먼저다. 처음엔 힘들었으나 차차 이런 일상에 적응이 된다.

 

술집 안 가고 여행 안 가는 일상이지만 심심할 틈은 없다. 철저하게 TV와 주전부리를 멀리 해야 책 읽기도 지속할 수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운동 습관 무뎌지는 것처럼 게으름이 잽싸게 자릴 잡기 때문이다.

 

개정판으로 나온 <인간 없는 세상>은 책 표지부터 인상적이다. 빌딩이 빽빽한 도시 풍경 밑으로 오직 나무만이 무성한 푸른 숲이다.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바뀔 풍경을 보여준다. 이 책을 감수한 최재천 선생도 이렇게 말했다.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웬 착각인가? 지구는 끄떡없다. 우리가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라지면 공가와 물이 다시 맑아지며 지구는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지구상에 있는 새들 중에 적어도 3분의 1은 그 사실을 눈치도 못 챌 것이라고 했다. 새들 뿐인가. 인간이 편리함을 위해 도로를 거미줄처럼 건설하면서 야생동물의 이동이 막힌 곳이 많다. 로드킬은 또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인간이 사라지면 뉴욕 지하철은 물이 가득 들어차 점점 수중 동물들의 통로가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비무장지대도 언급한다. 전쟁 이후 4km의 비무장지대 띠가 생기면서 그곳은 한반도의 유일한 청정지역이 되었다. 지금도 거기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장대한 우주 역사에서 인간은 한낱 티끌에 불과하다. 학자들이 말하는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교양서이자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138억 년 우주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해 보자. 행성 지구가 탄생한 46억 년 전은 얼추 9월 1일 경이다. 지구에 생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10월 초였고, 인류는 섣달 그믐날, 그것도 오전도 오후도 아니고 밤 11시 40분이나 돼서야 나타났다.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11시 59분을 넘긴 시각이다. 인류가 농업 혁명을 일으키며 인구가 늘기 시작한 때는 자정을 불과 20초 앞둔 시점이었고, 르네상스는 자정 1초 전에 일어났다>.

 

언젠가부터 내가 오만해질 때면 떠올리는 문장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어쩌다 운이 좋아 인간으로 태어나 호사를 누리고 있다. 티끌 같은 인생, 가능한 적게 쓰고 적게 먹고 욕심 누르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