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잠 못 드는 밤 백석의 시를 생각하며 - 김상욱

마루안 2021. 2. 21. 19:50

 

 

 

스물이 훨씬 넘도록 내가 아는 시인은 교과서에서 배운 시인이 전부였다. 읽은 시라고는 윤동주와 한용운, 서정주의 시였다. 군대에서 만난 선배 덕에 시인의 영역이 넓어졌다. 그때 선배가 읽던 황동규, 오규원, 황지우 시집을 처음 접했다.

 

감동은 별로 없었다. 그냥 스스로 잘난 맛에 사는 시인들의 지적 허영심 정도로 읽었다. 그 선임과 나는 성격은 이질적이나 어딘가 맞는 구석이 있었던지 늘 보초도 같이 서면서 곧잘 어울렸다. 진중하지 못하고 팔랑개비처럼 가벼운 나에 비해 그는 가슴 속에 돌덩이 하나 담고 있는 듯 언제나 고뇌에 찬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그때 감염된 시 바이러스가 지금의 시 읽기에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당시에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였던 시였지만 내 몸 어디쯤에 숙주로 남아 있다 훗날 삐져 나왔던 것이다. 이후 나의 시 읽기는 누가 권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 선택한 시집이 대부분이다.

 

시집뿐 아니라 대부분의 책이 명사의 추천이나 매스컴의 홍보로 선택하지 않는다. 되레 읽으려 했던 책이었으나 베스트셀러가 되면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기형도가 죽은 후부터 내 방식의 시 읽기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럼 백석 시인은 언제 알았을까. 90년도 후반쯤일 거다. 그때까지 내 마음 속엔 윤동주와 김수영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백석의 시를 접하고 한 사람을 보태면서 그를 맨 앞자리에 놓았다. 60년이 넘은 시였는데도 북쪽 사투리만 이해하면 현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백석의 시를 틈틈히 읽었다.

 

그후 20년이 지난 며칠 전에 이 책을 알았다. <잠 못 드는 밤 백석의 시를 생각하며>는 김상욱 선생의 시 에세이다. 몇 편의 책을 썼다지만 이 양반 책은 처음 읽는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한결 같겠으나 저자의 시 사랑은 대단하다.

 

글도 참 잘 쓴다. 백석의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금방 빨려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친구에게 빌린 만화에서부터 샘터, 선데이서울 등 비교적 일찍부터 온갖 활자와 친숙했던 문학 소년이었지만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잠을 못 이룬 적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백석의 시를 처음 만났을 때 감동이 다시 전달된다. 여승, 북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선우사, 흰 바람벽이 있어 등 주옥 같은 시를 저자가 겪었던 일상과 접속해 읽는 이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책 읽는 기쁨이란 이런 것인가.

 

김상욱 선생의 백석 찬사는 이렇다. <백석의 시는 시 읽기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즐거움을 내게 준다. 백석의 시를 가만 읊조리면 리듬이 살아나고, 의미가 덧쌓이며 때로는 마음이 눅눅해지도 하고 무엇을 향한 것인지 모를 그리움이 샘물처럼 가만가만 차오른다>.

 

백석이 남긴 100여 편의 시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와 분단 이전인 1935년에서 1948년에 쓰인 시다. 월북 작가가 아닌데도 그가 북쪽에 남았다는 이유로 남쪽에서는 긴 세월 백석의 시는 금기였다. 그런 면에서 한국문학사는 애통하고 또 애통하다. 

 

분단이 없었으면 내가 매년 지리산과 설악산을 오르듯 백두산과 금강산을 수십 번은 갔을 것이고 군대에서 3년 가까이 썩는 손실도 없었을 것이다. 통일은 아니라도 남북이 평화롭기만 하면 여행이라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설사 비자를 받더라도 말이다.

 

분단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엄청난 손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간과한다. 분단 이후 백석은 북쪽에서도 당국의 눈에 벗어나 1958년 이후 시를 발표하지 않는다. 백석은 48세 무렵, 북한에서도 오지 중 오지인 삼수군으로 쫓겨나 양치기로 살다 85세 나이로 죽을 때까지 잊혀진 사람으로 살았다.

 

시인 백석에 관한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는 백석이 억지로 시를 쓰지 않으면서 그가 결국 시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룬 셈이라고 했지만 이것도 분단이 낳은 비극 아니겠는가. 백석이 남쪽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떠나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