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어제의 지도를 허물면서 간다 - 신표균
나침반이 가리키지 못하는 사막의 길을
내비게이션은 손짓할 수 있을까
목마른 낙타 한 마리
오아시스 찾아 사막 속을 간다
눈썹에 매달리는 모래바람
마른 울음으로 헤치며 발걸음 다시 내딛지만
모래 속에 파묻힌 길이
어디로 닿아있는지 돌아갈 길 막막한
길 위에 서서 길을 묻는다
날개 부딪히는 일 없을 철새 떼가
날아가는 길 없는 그곳이나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눈엔
지도가 없다
*시집/ 일곱 번씩 일곱 번의 오늘/ 천년의시작
자정의 종소리는 종종 징징거린다 - 신표균
둥지도 무덤도 만들지 않는 눈먼 떠돌이 새들
동물원 안에 갇힌 매의 노란 눈에 놀라
검은 나비처럼
내 과거를 매장해 놓은 언덕 위를 날아다닌다
틀니 달그락거리는 소리 잦아든 귓속에서
자라는 침묵 아버지는 발자국 소리 숨기지만
세에라자드의 밤을 향한 발걸음 땅에 닿지 않아 숨이 차다
신데렐라의 자정은 왜 그렇게 조급한 건지
역정이 입안에서 뿌리내리는 동안
시계의 종소리는 세상 모든 시간을 깨뜨려 버릴 것처럼
큰 소리로 징징댄다
나무들 세상으로 내려서고
나는 여자의 성기를 귀에 대고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머릿속은 오르가슴이 치받쳐 기형적인 생각들로 팽창해
경전 속에 네 편지를 숨겨 베두인처럼 떠돌고 싶다
밤비 추적추적 내리는 버스 정류장
무명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마지막 버스를 기다린
비의 창으로 차이콥스키의 비창이 들려오고
한 척의 고독이 밤안개를 지나 도시의 불빛을 헤치며
둥둥 떠가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꼭 필요할 때 등장하는
네 고독을 픽업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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