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한 남자 - 히라노 게이치로

마루안 2021. 2. 15. 19:55

 

 

 

사랑했던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둘 다 재혼이라는 것을 알고 결혼 생활을 했지만 남편이 생전에 고백했던 자신의 과거는 완전 가짜였다.

 

이혼 후 고향 부모님 집으로 내려 온 <다케모토 리에>는 <다니쿠치 다이스케>라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자식까지 낳고 살던 4년 간의 행복도 잠시, 다정하고 성실했던 남자가 사고로 죽는다.

남편의 가족에게 연락을 하자 모르는 사람이란다. 세상에,, 사랑했던 남편이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았던 가짜였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리에는 예전에 이혼 할 때 도움을 줬던 변호사 <기도 아키라>에게 남편의 과거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소설은 이제부터 기도의 발길을 따라 탐정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 감명이 깊으면 감독의 과거 작품을 찾게 되듯 소설도 마찬가지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한국에도 많이 소개가 된 작가지만 그의 소설은 처음이다.

 

1975년에 출생한 히라노 게이치로는 <平野啓一郎>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일본인 이름을 가진 소설가다. 소설 한 남자(ある男 - 平野啓一郎)는 2018년에 나왔다.

 

예전에 히라노 게이치로가 툭하면 혐한(嫌韓)을 부추기는 일본 잡지나 TV 와이드쇼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 있다. "한국 문제만 나오면 미디어는 무책임하게 반감을 부채질하고 혐오감이나 적의를 배출한다." 그는 일본인이면서 지식인답게 일본 우익의 차별과 혐오를 점잖게 비판했다. 나는 이 작가를 마음에 두었고 그이 소설을 읽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에서 한 남자는 과연 누구를 가르킬까. 과거를 숨겨야만 했던 한 남자를 지칭하지만 등장 인물 몇몇과 독자인 나도 포함된다. 예전에 나도 가식에 쩔어 살 때가 있었다. 이름을 바꾸고 내가 아닌 척 하면서 살고 싶었다. 실제 스스로 개명한 이름을 잠시 쓰면서 살기도 했다. 발음이 어색하고 촌스러운 내 이름을 지우고 싶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정직하지 못했을까.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변호사 <기도 아키라>다. 재일동포 3세로 일본인으로 귀화를 했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산다. 일본인 아내에다 아들을 낳고 완전 일본인으로 살지만 그의 깊은 내면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는 지울 수 없다.

무심코 켠 TV에 나오는 . "조선인을 죽여라."고 외치는 일본 우익들의 데모 현장을 세세하게 묘사한 장면도 나온다. 일본에서 한국인은 남한을 가르키지만 조선인은 남북한 모두를 칭하는 말이다. 기도의 시선에는 거북한 풍경이지만 일본인들의 밑바탕에 깔린 嫌韓(嫌朝)은 엄연히 존재한다.

소설은 한 남자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결혼제도, 인종차별, 사형제도 등 무거운 주제들을 등장시킨다. <다니쿠치 다이스케>로 죽었던 남자를 변호사 기도는 X라 정하고 추적했다. 한 남자 X는 여러 번의 신분 세탁으로 자신을 숨겨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게 하면서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