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면에 든다 - 허림

마루안 2021. 2. 16. 22:15

 

 

내면에 든다 - 허림


삼 년 전쯤인가
카드 돌려막기로 한 달 한 달 근근이 살아내고 있을 때
그 밑돌 빼는 일마저 막히고 셋방 빼달라는 통첩을 들었을 때
내면에 사는 그에게
문자 넣은 적 있다

그 말이 옹이졌는지
내 창고 지으려는 터에 오막 지으면 들어와 살래나? 묻길래
물론이지 여부가 있나

그 후,
생의 오막에 드는 날이면
개똥벌레 날아
길이 환했다


*시집/ 엄마 냄새/ 달아실

 

 

 



첩첩 - 허림


내면이라는 곳은 내면일 뿐

광원이나 명지리 달둔 월둔 살둔 사월평 원당 일어서기 같은 이름들과
큰한이 작은한이 경천 문암 절에 가덕 같은 골짜기에도 바람은 불어오고

눈이 내렸다 하면 한 길씩 빠져
꺽지나 텡가리처럼 터살이 하는 곳

살다보면 대추나무 연실 걸 듯
서로 사는 집들이며 얼굴이며 말씨며 말투도 닮고
입맛까지 닮아가는 풍경 그 너머

유목민처럼 몰려다니는 안개가 산기슭마다 고여 일렁이는 곳
아직도 권 대감의 전설이며 설화가
나무뿌리처럼 엉켜 있는

내안의 생태적 꿈
너머 거기




*시인의 말

아주 오래전에
그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사랑해'
였는데

오늘
다시 물었다

'이젠 사랑하지 않아'

고맙다

함께 살면서
사랑하지 않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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