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왜행성 - 김태형

마루안 2021. 2. 15. 19:35

 

 

왜행성 - 김태형


먼 하늘을 올려다보니
심장 한 쪽이 무너지고 있는 게 보인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아직 한 쪽의 심장이 남아 있다
남은 심장 한 쪽으로
돌이킬 것인가
그 힘으로 얼음덩어리와 운석들이 가득한 곳으로
저 암흑까지 조금 더 가 볼 것인가
선명하고 밝은 심장 한 쪽이
거대한 운석의 충돌 때문에 생긴 것이라니
남은 한 쪽의 심장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사라지라고 했지만
정작 사라진 사람은 나였다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나는
한동안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려고
보이지 않아야만 했다
남은 심장 한 쪽에 얼어붙은 대평원이 없었다면
한 쪽의 심장마저 잃고야 말았을 것이다
궤도를 끊고서 떠돌다가
먼지가 되거나 파편이 되어 다시 돌이키려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영원토록 어둠이 되었을지 모른다
다행이다 내게 심장 한 쪽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힘으로 섣불리 돌이키려 하지 않고
어딘가로 훌쩍 건너가 버리지도 않고
궤도를 돌고 있다 보이지 않은 채로 그 힘으로


*시집/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문학수첩

 

 




초라한 짐승 - 김태형


화산재가 내려앉은 듯 굽은 골목으로
두 발자국이 남아 있을 뿐
누구였을까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가까스로 남은 쭈그러진 허기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저주와
한 줌의 주먹으로 남은 황막한 곳에서
내가 말하는 것들이 하나씩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린다는 말은 숨기에 좋은 말이다

가죽나무 아래에서 왜 새가 우는지 아무도 몰라도
벽 뒤에서 밤이 지나간 것을 알고 있다
액자를 떼어 내도 그 벽은 있다
소파를 옮겨도 먼지를 쓸어 내도
긴 밤은 여전히 길고 긴 밤으로 남아 있다
못을 쳐서 다시 벽을 만들어도
그 뒤에 지난밤이 지나가고 있다

올려다보면 다 고요하다
귀만 자꾸 멀어지는 비가 내린다
나는 내가 한 말이라도
내가 한 말은 내가 되었더라도
아픈 건 드러낼 수가 없다
내가 되지 않으려고 나는 자꾸 무슨 말인가를 하곤 했다
마른 잎 떨어져 찬바람에 내내 귀가 시린
그런 슬픔 속에 살라고
목젖에 마흔 개의 가시가 박힌 새가 운다
왜 가죽나무 아래 새가 우는지 아는 이 하나 없어도

 

 

 

 

# 김태형 시인은 1971년 서울 출생으로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로큰롤 헤븐>,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코끼리 주파수>, <고백이라는 장르>,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등이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포대교 - 손석호  (0) 2021.02.15
플랫이 붙은 어느 노동자의 악보 - 조우연  (0) 2021.02.15
시간의 정오(正誤) - 전형철  (0) 2021.02.10
트럭의 우울 - 고광식  (0) 2021.02.10
잠 - 박윤우  (0) 202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