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간의 정오(正誤) - 전형철

마루안 2021. 2. 10. 22:04

 

 

시간의 정오(正誤) - 전형철
-종로 3가


오랜만이다

별을 문진하느라 5분쯤 늦을 것 같아

소설의 지문 같은 말

자주 이름이 보이더라

오늘 달과 화성과 금성이 직렬한대

우리가 모일 수 있는 최적의 편성표겠지

다리를 묶어두거나 의자를 좀 당겨 앉아

4년마다 1초쯤 느려지거나 빨라지겠지

이런 날엔 눈은 주머니에 넣어 두고

집을 비우는 거야

울타리에 묶인 종은 하루만 울고

네 번째 간빙기에는

붉은 심장을 문밖에 쌓아두고 다음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는 거야

땅속 길이 너무 뜨거워

막차는 주말에 달라지겠지

지구가 멸망하면 인사하자

너는 누구의 행성이니, 우리는 누구의 얼굴이니


*시집/ 이름 이후의 사람/ 파란출판

 

 

 



건강검진 - 전형철


올 것이 왔다
약속을 미루고 몇 번이나 퇴짜를 놓았지만
시민은 곧 용병, 공단이
과태료를 월급에서 공제한다 최후통첩했다
고향 집에 생활비를 부치는 낭만의 파병 용사에게
앓고 있거나 앓을 병을 진단하고
예언해 보겠단다
앓았던 병은 많았는데
몸만 아팠던 것도 아니었는데
오늘도 한 끼를 때우며
공복을 빙하기 삼아 살고 있는데
이 생(生)이 한 번은 아니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지만
나는 귀화식물처럼 튼튼하지 못했나 보다
본 적 없는 자식과
자주 깨는 꿈 사이에서
병이 보일 만큼
덜컥
마음이 기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랫이 붙은 어느 노동자의 악보 - 조우연  (0) 2021.02.15
왜행성 - 김태형  (0) 2021.02.15
트럭의 우울 - 고광식  (0) 2021.02.10
잠 - 박윤우  (0) 2021.02.10
뜨거운 포옹 - 김태완  (0) 2021.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