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뜨거운 포옹 - 김태완

마루안 2021. 2. 9. 22:23

 

 

뜨거운 포옹 - 김태완


눈발 휘몰아치는 겨울 한복판
기차역 대합실에 몸을 실었다

웅성거리는 대합실 눈발처럼 부산한 사람들

어디를 가야 할 사람들 어디서 오는 사람들 틈 사이로 꾸부정하게 들어오는 냉기
들리지 않는 뉴스를 보는 사람들 무표정한 자막처럼 흘러가는 긴 꼬리의
하행선 기차가 덜그럭거리며 역무원의 깃발과 멀어질 때
두리번거리며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들 코트에 떨어진 눈을 털며 들어오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며 연착된 시간을 향해 투덜거리는 젊은 여자의 힐 소리 마술 지팡이가 되어 주문을 걸고 소원을 말하고 싶은 겨울 한 복판 날리는 눈발들

기다림의 시간은 겨울과 닮아 차고 냉정한 여자의 짙은 화장, 가려진 표정
피하고 싶은 겨울 눈발처럼 접고 접어서 날린 공연한 옛 추억에 모두가 잠시
우수에 젖고 누군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기도하고 싶은
더러는 이 계절, 겨울이 사람을 끌어안는 계절

이 뜨거운 포옹을 용서하자
결코 품 안에 담을 수 없는 인연
나의 뜨거움이 더러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철로 두 가닥이 한참 멀어진 저 끝 어디쯤에서 하나가 된다


*시집/ 아무 눈물이나 틀어줘/ 북인

 

 

 

 

 

 

을씨년스럽다 - 김태완


여기가 어디쯤이야?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는 모두 을씨년스럽다고 말했다
움츠려드는 한때의 어느 시절처럼
골목에 갇힌 바람은 답답하게 서성이고
동그란 눈으로 길을 찾는 길고양이들
목줄을 맨 개들이 낯선 온도에도 짖지 않는다
시든 꽃들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담벼락
가을도 아닌 것이 겨울도 아닌 것이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옛 사랑처럼
같은 무게로 오랜 시간 쌓이는 기억
쓸쓸한 어깨 툭,
털어낼 수 없는 이야기들
십일월은 아파오는 긴 통증을 견디는 계절

여기가 어디쯤일까
우리는 잘못 들어온 골목을 뱉어냈다.

 

 

 


*시인의 말

<왼쪽 사람>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10년을 넘기면서 많이 쓰고 많은 것을 지웠다.
작고 소소한 것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면서
시력은 흐려져도 눈물은 더 맑아지길 바랐다.
슬픔에 대한 분노와 아픔을
지극하고 소박한 밥 한술 넘기듯
내 몸, 발화된 온기를 나누고
이번 시집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나왔다가
잘 사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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