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시는 처음 읽는다. 이 시집은 그의 네 번째 시집이다. 12년 전에 세 번째 시집을 냈다고 하나 나의 그물망에는 걸리지 않은 시집이다. 네 번째 시집에서 뒤늦게 이 시인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시가 참 좋다.
밑도 끝도 없이 좋다? 그런 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더구나 시집을 공짜로 얻어 읽은 지인이라면 그 정도의 말부조는 해줘야 한다. 시인과 일면식도 없기에 내 돈 주고 사서 읽은 나는 그런 하나마나한 말부조를 할 필요가 없다.
김태완의 시는 묘한 여운이 남는 시라는 것, 그리고 시집 열심히 찾아 읽는 내가 열 권 읽어서 한 권 남는 시집 중에 하나라는 것, 이 정도는 된다. 게으름 중에도 시집 소식은 비교적 챙기는 편이라 유명 출판사에서 나오는 신간 시집은 서점에 갈 때마다 꼬박꼬박 들춰본다.
열 권 넘게 시집을 냈다는 시인의 시집을 읽고도 아무 감흥이 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시집일수록 눈에 잘 띄는 서점 앞자리에 놓이고 출판사에서도 신문사 문화기자도 알리는데 열심이다. 그러나 나는 번번히 그 감동 대열에 끼지 못한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길고양이처럼 내 방식의 안목으로 이 시집을 골랐다. 억지로 쥐어 짜는 감정이 아니라 오래 묵은 슬픔이 짙은 서정성에 담겨 잔잔하게 전달된다. 시집 곳곳에 묻어 있는 시인의 슬픔이 가슴 속에 들어와 온전히 내것이 된다.
지나간 것들의 냄새가 나
아궁이 불 피우는 냄새
무쇠솥을 데우며 피어오르는 연기 냄새
둥근 밥상머리 아버지 땀 냄새
어둔 밤길 산에서 내려온 숲 냄새
행복이 뭔지 몰라도 마냥 좋은 우리들의 발 냄새
지나간 것들이 익어가는 냄새가 좋아
*<슬픔이 익어갈 때 좋은 냄새가 나> 일부
청각, 후각, 미각 등 온갖 감각을 느끼게 하는 싯구다. 아파트가 주거지로 자리 잡으면서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훗날 이런 감정을 박물관에 간다한들 끄집어 낼 수 있겠는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밥을 하던 시절 어둔 밤길 산에서 내려온 숲 냄새를 몇이나 알까.
이밖에도 시인의 年式을 알 수 있는 시가 깊은 울림을 준다. 독자에게 쉽게 전해지는 시가 금방 녹아 없어지게 마련인데 이 시인의 시는 그 울림이 가슴 속에 오래 머문다. 살면서 소중한 것들이 어디 한둘일까. 이렇게 맑은 슬픔을 읽어 내는 내 눈이 참 소중하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시력은 흐려져도 눈물은 더 맑아지길 바랬고, 이번 시집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나왔다가 잘 사라졌으면 한다>고 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덮친 이 혹한의 겨울밤에 따뜻한 방에서 시를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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