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 오찬호

마루안 2021. 2. 2. 19:39

 

 

 

사회학자 오찬호의 책은 몇 권 읽었으나 후기를 쓰는 건 처음이다. 노량진 고시촌의 현상을 말하거나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시대의 암울함을 지적하는 책은 참 많이도 공감이 갔다. 그의 책은 읽고 나면 씁쓸하지만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모두들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갈 대목을 지적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책이 읽으면 불편하다고 했다. 이 책에도 부제목으로 그걸 언급하고 있는데 나는 그래서 그의 글이 좋다. 구구절절 공감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줄이거나 짧은 걸 좋아해서인지 잠깐만 한눈 팔다 돌아오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 수두룩하다. 초성체로만 된 문장이나 줄임말의 뜻을 알기 위해 한글 공부를 새로 해야 할 판이다. 요즘의 SNS는 짧고 달달한 글이 유행이다.

 

그런 시대에 오찬호는 불편한 내용을 길게 쓴다. 당연 잘 안 팔리는 책이다. 요즘은 책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같은 실용서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글도 짧으면서 자극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책은 필요하다. 이런 책이 있어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

 

코로나 시국에 너무나 많은 일상이 엉망으로 바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천 년 전에도 백 년 전에도 십 년 전에도 자기가 사는 시대가 가장 살기 힘들다고 했다. 암울했던 시대와 맞서 싸우면서 잘 이겨낸 덕택에 그 동안 세상은 편리해졌고 좋아졌고 나아졌다. 

 

누구나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면서 막상 닥치면 주저한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여럿이지만 특히 연대를 잃어버린 사회를 지적하는 대목에 오래 눈길이 간다. 한 대목 옮기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조금 불편해지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에 힘을 보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처음부터 똥을 피하는 데 익숙해졌기에 치우는 건 자기 몫이 아니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그러다가 자신의 일상이 어그러지면 취업 등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안다. 이들은 힘들어도 팔자가 그런 걸 별 수 있냐는 체념으로 살아간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악순환의 선순환이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는 결의를 백 번 천 번 증명해도 취업이 힘든 세상, 그 좁은 바늘구멍 앞에서 자신을 민주시민과 연결시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약자들과 연대한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풍기는 대외활동은 금기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