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유리 주사위 - 정현우

마루안 2021. 2. 4. 19:51

 


유리 주사위 - 정현우


두 눈은 울기 위해 만들어졌지,
인간은 가장 말랑한 슬픔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돌려도 주사위의 검은 눈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두 개의 눈동자 또는
7

죽은 이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내겐 운,
슬픔을 가진다는 것 또한 인간이 되기 위한
경우의 수,

천사는 생각해, 마음껏 울어도 돼 그래도 돼
얼마나 많은 슬픔을 깨뜨려야
사람이 인간이 될까

깨질 듯 굴러갈 듯
천사들이 사람을 줍고 있다.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

 

 

 

 

 


도화(桃花) - 정현우


*
칠월, 주인집 아저씨는 개를 잡았다.
사람들은 검둥이 눈을 보고 있었다.
도망가는 검둥이를 쫓는 사람들,
무더위가 뒤따라갔다.
그럴 거면 한번에 죽여버리지.
학교에서 배운 성선설을 중얼거리는데
앵두나무가 미친 듯이 붉은 눈동자를 매달았다.

*
앵두, 발음하면 다 찢긴
입술이 모였다. 
우우- 울던 검둥이 입
꽃의 모가지를 붙들던
입가에서 툭,
터지는 물집.

죽음의 끈을 풀고 달려가는 검둥이는
다시 잡혀오고,
앵두의 핏물이 작렬했다.

내 안을 감던 눈이 떠졌다.
그건, 신이었나,
쉽게 으스러지는 살갗,

개는 짖는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
어른들은 평상에 앉아 화투를 쳤다.
알록달록한 화투패가
찰싹,
나를 뒤집었다.
얼크러진 앵두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몇개나 있을까.
손가락을 접어
하찮은 것들을 셌다.

마룻바닥으로
앵두나무 한 그루가 납작 엎드리고
몰래 죽음을 풀어주는 방법을 몰랐다.

짝이 맞지 않아도
나는 뒷장이 궁금했다.

 

 

 

 

# 정현우 시인은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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