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달빛 아득했느니 - 김재룡

마루안 2021. 2. 2. 19:59

 

 

그 달빛 아득했느니 - 김재룡

 

 

남서능 끄트머리에서 시작하여

겨우 동북 주능으로 붙었을 때

이미 거리를 잴 수 없는 어둠의 저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 발자국 앞의 침침한 시선마저도

불연속적인 새소리와 함께 푸득인다

 

허기와 함께 달라붙는

거친 어둠의 숨소리 끝없이

달빛을 밀어내며 달빛이 질 때까지

또 다른 어둠에 접목되는 산

그의 허리 갑자기 움틀거리는

본능

 

어떤 짐승이 능선을 타거나

상봉에서 상상봉으로 오르는가

인간 아닌 어떤 짐승이

이 산의 정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는가

피투성이로 절룩이며 끌고 온

쫓기는 꿈을 계산 없이 드러내는가

 

뻘뻘거리며 원시림을 뚫고 나오다

문득 마주치던 몇 기의 돌무덤

산맥을 끌고 가는 별무리

부서지는 달빛 따라 꿈길처럼 이어지는

야간 산행의 한복판 이 산의 정상에서

주검과 함께 나란히 누이고 온

그들의 꿈을 흘려보낸다

 

누구일까 분명 이 산중에서

남과 북을 오가던 파르티잔이었을

이 무덤의 주인들

무슨 상관이랴, 내 땅

이 산맥에 묻혀 썩어버린

이루어지지 못한 꿈인 걸

한갓 꿈인 걸

 

그때 이 산릉의 정상에서

당신들이 마주친 달빛도

아득했으리라 아득했느니

 

 

*시집/ 개망초 연대기/ 달아실

 

 

 

 

 

 

산(山)불과 꿈 - 김재룡

 

 

지금은 잠들어 꿈속인가

꿈을 꾸게 되면

죄를 부르는 짐승으로 화하는 꿈속인가

 

불길하기만 한 꿈길에 취해

끌리듯 들어와 갇힌 이 산중에

사람은 아무도 살지 않고

어둠 속으로 거친 짐승들의 웅성거림만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한밤중 불붙어 타오르는 산

무수히 일어서는 불길이

가파른 등줄기를 훑어 올라가도

꿈쩍도 하지 않으며

겨우내 메마를 대로 메말라

앙상한 꿈 조각들만 모여 있는 가슴을

한꺼번에 불 살러내는

무슨 뒷전을 벌이고 있는가

 

겹쳐 번지는 불덩이 한가운데에서

훤하게 타오르는 붉은 절망을

저렇게 무더기로 사르어 내려면

얼마나 많은 험한 꿈들을

보듬어 안아야 하는가

 

몹쓸 푸닥거리에 씌운 듯

거센 불길 속에서도

화염과 함께 살아 오르는 그대

그 질긴 목숨은

또 다른 어떤 불같은 꿈을

뜨겁게 살아가려 하는가

꿈꾸기 위해 내 목숨과 함께

네 목숨을 활활 불사르고 싶구나

 

 

 

 

*2016년 12월 6일

이유없는 슬픔이 있을 수 있다. 무연한 눈물. 그러나 그 눈물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한 인간의 생애가 보일 것이다. 한 국가가 수백만의 촛불로 눈물을 흘린다면 그 슬픔의 뿌리와 역사도 보일 것이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눈물은 슬픈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당연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충분히 눈물 흘렸고 그 눈물만큼 딱 그만큼의 기끔도 함께했다. 나를 보면 마냥 웃는 어머니처럼 더 자주 웃으며 살 거다.

 

*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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