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계관(鷄冠) - 김유석

마루안 2021. 2. 2. 19:46

 

 

계관(鷄冠) - 김유석


새장에 갇힌 새는 얼마쯤 시간이 흘러야 나는 법을 잊게 될까

새장의 새는 한동안 파닥거린다.
갇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창공과 새장은 공간의 차이
공간의 차이를 안과 밖의 문제로 바꾸는 것은 먹이

새의 깃과 새의 높이와 날아가는 방향이 깃든
먹이가 새장을 길들인다.

갇혔음을 알고도 새는 이따금 파닥거린다.
먹이를 찾는 습관이다.

가장 빠르게 창공을 버리고 귀화한 조류는
날지도 못하면서 푸드득거리는 종들

봉황의 볏을 달고도 날지 못하는 닭은
몸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기억을 잊어버린 까닭이다.

밖으로 날아간 새는 또 얼마큼 지나야 갇혔던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 도서출판 상상인

 

 

 

 

 

 

유월 - 김유석


보리밥나무 열매 속으로 붉음이 스며든다. 붉음은 유월에 익는 것들의 감정.

비긋이 열린 마당을 적시는 눈시울이 생혈 같다. 푸른 몸에 밭는 붉음은 공연히 서럽고

빈집을 들른 저 빛은 뒤늦게 건네는 기별 같아서 마당귀 늙은 감나무의 귀가 닳고

붉음이 제 몸을 휜다. 가지 아래 더운 숨결이 고인다.

그늘을 쓰면 해묵은 배고픔이 내려 얹히는 한 철

저 붉음은 어디서 오는가, 보리누름 들판 망연히 지켜 선 몸에

사무치듯 벌레가 끓는다. 붉음이 벌레들을 끈다.

그렇게 밖에는 지울 수 없는 제 몸의 붉음을 맛보며 나무는 늙고

익는다는 것은 조금 늦게 오는 통감(痛感), 저 붉음으로 다시 들 곳 이번 생에는 없어

저절로 짓무르는 기억들..... 버려지듯 떨어진다.

 

 

 

*序

맨발로 무논에 들면
물렁하고 존존하고 은연한 힘이
몸에 낀다.

그렇게 살을 섞는 감정이거나

한 발을 빼면
바닥이 쑤욱 들려나오는
그런 느낌을

나는,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