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이나 평전을 잘 읽지 않으나 때론 예외가 있다. 리영희 평전인 <진실에 복무하다>를 작년 말부터 읽기 시작해 근 두 달 만에 마지막 장을 덮는다. 두 번 연속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극히 드물다.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리영희 선생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북괴라 부르고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던 시절부터 그의 책을 읽었다. 오래 전 그의 자전적 에세이 <역정>을 읽고 선생이 살아온 삶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았다.
한 사람의 인생 역정 속에서 이렇게 떨림과 울림을 주는 책이 있었던가.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 몇 권 더 구입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 리영희, 당시 선생의 책에는 이영희(李泳禧)로 표기했다. 예전 두음법칙이 실행되기 전인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리승만이었다.
두음법칙이 없는 북한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방북 때 로무현으로 표기했다. 로화(老化), 력사(歷史) 등 두음법칙에 익숙한 우리는 조금 어색하다. 2007년인가 우리도 성(姓)을 표기할 때 두음법칙 예외 규정을 적용해 류(劉·柳), 라(羅), 리(李) 등으로 표기할 수 있다.
각설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기 전까지 내 마음에는 리영희 선생을 제1번으로 담고 살았다. 그 이전으로 가면 전태일, 장준하, 김구, 전봉준, 조광조 등의 삶을 존경하지만 그들은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이거나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리영희 선생의 평전 <진실에 복무하다>는 권태선 선생이 썼다. 권태선 선생은 1955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을 지냈다. 지금은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와 리영희 재단 이사로 있다. 남자 이름 같으나 여성이다.
평전은 쓰는 사람에 따라 부풀리거나 찬양 일색이 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아주 비판적이고 객관적이다. 이전 리영희 선생의 책을 빠짐없이 읽어 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아내에게 모질고 자식들한테는 냉정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것처럼 가족에게까지 발휘한 그 대쪽 같은 선생의 성품으로 인해 그리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 집으로 수사관이 들이닥치고 감옥에 갇힌 아빠를 면회 가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리영희 선생이 기자 시절, 어쩌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기사를 쓰는 신문사 기자로 살았다면 이곳저곳에서 슬쩍 찔러주는 촌지를 챙겨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아빠가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아빠였을 것이다.
그런 평탄한 길 마다하고 온갖 회유를 물리치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은 사람이다. 애국이나 국가가 아닌 오직 진실을 추구한 선생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베트남과 중국의 실체를 알았고 루쉰의 일생을 알았다.
누군가는 리영희 선생을 격랑의 시대를 진실로 돌파한 '뜨거운 얼음'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제대로 표현한 문구다. 한 사람의 삶이 바로 역사가 되는 인생이 몇이나 될까.
누구든 가치 있는 인생이고 우주적이지만 이런 인생 드물다.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지났지만 선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것은 행운이었다. 게으름을 피우고 느슨해진 마음을 추스리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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