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 유영규 외 4인

마루안 2021. 1. 30. 21:17

 

 

 

좋은 책을 읽었다. <논쟁으로 읽는 존엄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죽을 권리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5명이다. 몇 년 전 서울신문에서 <존엄한 죽을을 말하다>라는 특집 기사를 모태로 한 내용에다 추가 취재를 보태 책으로 나왔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로 가서 죽음을 맞았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이 책 앞부분에 지은이들이 직접 스위스까지 날아가 취재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이 책은 죽을 권리를 말하면서 네 가지의 존엄사를 언급한다.

 

첫째가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말 그대로 존엄사고 둘째가 소극적 안락사, 세 번째가 적극적 안락사, 네 번째가 조력자살이다. 나는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적극 지지한다.

 

적극적 안락사란 말기 환자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 영양 공급이나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행동을 넘어 의사 등 타인이 치명적인 약을 처방하거나 주입함으로써 생명을 단축하는 방식이다.

 

조력자살은 회복할 가망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고통을 덜기 위해 의사에게서 치명적인 약이나 주사를 처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로 적극적 안락사로 볼 수 있다. 환자가 극약 처방 같은 의사의 도움을 받더라도 복용은 직접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구분하기도 한다.

 

스위스에는 조력자살을 돕는 단체가 여럿 있다. 이 책에는 그런 단체 중 하나인 디그니타스(Dignitas)를 통해 죽음을 택했던 한국인의 행적을 쫓는 내용이 나온다. 디그니타스에서는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기에 취재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한 사람과 연락이 되는데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사람의 친구다. 그는 친구의 부탁으로 스위스까지 따라가 마지막을 지켰다.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받은 한국인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력이 있을 때 스위스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는다.

 

이 책에 조력자살이 이뤄지는 <블루하우스> 건물의 24시를 기록한 내용이 나온다. 이 블루하우스는 한국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많이 온다고 한다. 디스니타스가 조력자살을 시행한 건수가 2018년에만 221명이었다. 

 

스위스 내 조력자살 사망자수는 한 해 천 명이 넘는다. 디그니타스 회원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조력자살을 원한다고 모두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까다롭게 심사를 해서 의사로부터 <그린 라이트>라는 신호를 받아야 조력자살이 실행된다. 

 

그린 라이트를 받지 못해 죽지 못하고 있는 어느 한국인 회원의 편지가 인상적이다. <극닥적인 방법으로 내 마지막 순간을 마감하고 싶지 않고,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다. 깨끗하게 존엄성을 지키면서 가고 싶었기 때문에 디그니타스에 조력자살을 신청한 거였다>.

 

조력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의 고통 호소는 다양하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죽고 싶다. 내가 슬픈 건, 죽어야 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 없어서다> 등 죽는 것도 쉽지 않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

 

매년 조력자살이 천 명 넘게 시행되는 스위스지만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는다. 환자 스스로 약을 먹거나 약물 주입 스위치를 눌러야만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퀘백주 제외) 등은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이 모두 허용되고 있다.

 

디그니타스가 자살을 부추긴다는 시각도 있지만 회원수는 날로 늘고 있다. 조력자살을 하려는 외국인의 경우 예상보다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많은데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라 해도 어느 정도 체력이 남아 있어야 스위스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청자들이 줄을 잇는 탓에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삶을 마감하는 것도 불가능하단다. 이렇기에 외국에서 온 조력자살 희망자는 몇 달간이나 더 살 수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여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단다. 

 

이 외에도 각국에서 논란이 되었던 존엄사에 관한 논쟁이나 법적 공방을 다루고 있다. 그중 80대 말기암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을 비관해 아내와 함께 자살을 택한 현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존엄사의 소중한 징검다리 호스피스에 관한 내용도 있다. 호스피스 병상이 턱없이 부족해 환자가 오래 머물면 퇴원할 것을 권유하는 경우도 있단다. 3주 남짓 머물다 삶을 마감하는 현실에서 호스피스의 본래 목적은 시한부 인생을 평화롭게 마감할 수 있게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