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여태천 시집

마루안 2021. 1. 23. 19:50

 

 

 

여태천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냈다. 2000년에 등단해서 20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냈으니 비교적 과작인 셈이다. 언제부턴가 이 시인의 시를 꾸준히 읽었다. 나와 코드가 맞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시인의 시집을 관심 있게 읽었지만 독서 후기에 언급하는 것은 처음이다. 때밀이가 손님의 몸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밀듯이 시집을 꼼꼼하게 읽었다. 첫 시부터 마지막까지 배치된 행렬에서 시인의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시인의 시집 배열을 보면 꽤나 과학적(?)이다. 꼬인 실타래 풀듯이 읽어야 하는 마구잡이 배열이 아닌 치밀한 계산 하에 시집이 구성되었다. 야구를 삶에 빗댄 그의 이전 시집 <스윙>에서부터 그 생각이 들었다.

 

하긴 야구만큼 과학적인 스포츠가 있던가. 구원으로 나온 왼손잡이 투수의 공 하나에 포수 싸인과 수비 위치가 바뀌는 것이 야구다. 공 반 개 차이로 어느 것 하나만 삐끗해도 전체가 어긋나 그날 경기를 망친다.

 

인생이 야구만큼 치밀하게 돌아가긴 힘들어도 생각 없이 살 수는 없다. 이 시집 전체가 잘 정제된 문구로 슬픔을 보듬는다. 시인의 삶에서 슬픔은 숙명이다. 내가 마음이 울적할 때 슬픈 노래로 슬픔을 정화하듯 이 시집으로 마음에 쌓인 슬픔을 말끔히 걷어 낸다.

 

이내 슬픔이 다시 고이겠지만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면 된다. 그럼 물음표까지 붙은 시집 제목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는 어디서 따 왔을까. 특정 표제작은 아니고 시 한 구절에서 빌려왔다. 이것도 시인의 치밀하게 계산된 의도다.

 

 

오늘이 아닌 곳에서

해는 지고 바다는 붉을 것이다.

 

(중략)

 

이미 해는 솟았는데도

이곳은 어젯밤처럼 어둡다.

 

나는 계속 쓰고 있다.

 

오늘의 날씨가 아니라 내일의 아침에 대해서라면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일은 뭔가 일어날 것이다.

 

*시, <읽을/힐 수 없는> 일부

 

 

시인은 과학적으로 꼼꼼하게 시집을 냈지만 나같은 소심한 독자가 기죽을 필요는 없다. 내 방식 대로 꼴리는 대로 편하게 읽으면 되니까. 시인은 앞으로도 암흑물질로 가득 찬 어둡고 까만 구멍을 지나갈 것이다. 나도 어둡고 까만 눈으로 시인을 오래 주시하겠다.

 

 

그 이후에 - 여태천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하얀 옷의 여의사가 말하길
이 봄이 다 지나가도
날개가 돋을 가능성이 없단다.

그럴 리가,
비시시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이 부시게 파랬다.

여름 지나 가을 가고
시린 계절이 시작되었지만
부러진 뼈는 붙지 않았다.

죽으면 차나무 밭에 묻어 줘.
부탁이야.
그리고 가슴 없는 여자들을 불러
스무아흐레 동안만 울게 해 줘.
다시는 뼈가 부러지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