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신을 설명하다 - 김대호

마루안 2021. 1. 23. 19:12

 

 

당신을 설명하다 - 김대호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면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기에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낮과 밤을 설명해야 하고
너무 쉽고 너무 뻔해서 일부러 길을 우회하는 행로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이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추가하는 달콤한 디저트

설명의 의미를 눈치챘다 해도 우리는 멈출 수 없지
기도해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루한 기도를 멈추지 않듯이
당신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드라마의 결말과
식탁의 반찬과 신발 밑창이 바깥으로만 닳는 이유 따위를 오해했을 것이다

어디까지 설명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문득 노안이 와서 당신이 아득하게 보일 때도 내가 당신을
어디까지 설명하다가 말았는지 기억나지 않았어
저녁을 설명하다가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네
통곡을 한 것이 오래되었고
당신의 육성은 음을 이탈했으므로

중독은 설명할 수 없다
눈물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그러나 눈물에 중독된 슬픔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음식 프로그램과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 비겁과
폭우와
미필적 고의의 반성과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지 않는 비명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이력서
결과가 먼저 왔고
지루한 풀이 과정만 매일 지속된다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고 싶을 때가 있지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설명이 예보하는 날씨들이다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식품 - 김대호


저녁에 먹은 시금치무침과 청국장이 내 몸의
영양과 구조가 돼 가는 동안
인테리어로 기능하는 고장 난 타자기, 백남준이 졸고 있는 사진 아래에서 인터넷 바둑을 두었다
시금치무침과 청국장이 소화되어 흡수되면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거친 고집이나 혹은
남에게 착하게 보이려고 쇼를 하는 위선의 웃음을 돕거나 탓하는 에너지가 된다
먹는 것이 대부분 내 일부가 되는 이 현상은
유전자보다 질긴 구석이 있다
식성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적 관습
고기를 먹은 날, 고기 같은 태도로 누군가와 싸웠다
식욕을 이길 수  있는 가치는 없었다
매일 먹는 식품과
성격이 비슷한 내가 매일 생겨난다
식욕에 의해
식품의 종류에 의해
나는 매일 다른 내가 된다

 

 

 

# 김대호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2012년 <시산맥>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가 있다. 2019년 천강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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