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성애자 - 이수익

마루안 2021. 1. 16. 21:50

 

 

동성애자 1 - 이수익

 

 

침묵은 다디단 액체처럼 내 입안을

적신다

아무런 말도 없이

 

동성애자끼리의 물리칠 수 없는 결함이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서 그 자리에

쓰러진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요가 흘린 침 사이로 당신이

지나간다 연거푸 내가 지나간다

얼굴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시집/ 조용한 폭발/ 황금알

 

 

 

 

 

 

동성애자 2 - 이수익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현재가 있다 그것은 이미

과거로부터 허락 받은, 미래로 나아가게 될 유산 그리고

업적,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를 존중한다 

 

탐미의 눈길로 조용히 바라다볼 것

크고 부드럽게 전신을 감싸듯 욕망을 자제하며

당신을 지킬 것 어떤 외부의 침략에도 견고하게 나의

주장대로 벽을 세울 것 우리 둘만의 고통과 기쁨이 넘쳐 올라

외부를 지배해 나갈 것, 그리하여 

 

우리는 달콤한 유혹의 샴페인을 터뜨리고 자유로움을

갈망하며 서로의 애무를 받아들이고 또는 어지러운 체취에 휘말려

한숨 가득히 열애의 순간순간을 누리기도 하지만, 정직하게도

우리는 오로지 단 하나뿐임을 몸소 체험하면서 즐기는 

 

동성애자! 다른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미워하며 끝까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

눈 밖에 지워지지 말 것, 그래서 어두운 발걸음이 젖어 드는 길모퉁이에

세워진 조그만 빈 집 하나쯤 되어주는 일

다만 그렇게,

 

 

 

 

 

*시인의 말

 

"대장간에서는 모든 것이 거칠다.

망치, 집게, 풀무 등 이 모든 것들이

심지어 쉬고 있는 순간에도

강렬한 힘을 내뿜는다."

 

바슐라르가 한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내면의 충격을 어찌 할 수 없는

시인은 불행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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