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울음을 미장하다 - 손석호

마루안 2021. 1. 8. 21:32

 

 

울음을 미장하다 - 손석호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슬퍼서
웃었다
울음도 자주 울면 얇아져
미장 층처럼 거친 세상에서 쉽게 찢어지고

때론 낯선 지하도 바닥에 떨어져 덩어리째 아무렇게 굳었다

울퉁불퉁한 초벌 바름 표면에 밀어 넣던
통증 부스러기 흩날리고

햇볕에 그을린 당신이 재벌 바름 되기 시작하자

무엇이든 세 번은 발라야 얼굴을 갖게 된다며 바빠지는 흙손
흙손 뒷면에 노을이 들이치고

붉어져 선명하게 드러나는 화상흔

예상치 못한 화재였다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한다

아물 때마다 뜯어내던 눅눅한 당신과

욱여넣어야 할 요철 많던 삶의 벽면

정처 없이 떠돌며 표정을 미장했으나
얼굴에서 꺼지지 않는 화염
노을에 불을 붙인다

이마에 기댄 팔뚝을 타고 타오르는 붉은 손목의 감정들

어디든 지나가면 평평해지던 흙손을 놓친다

가까워지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
황급히 골목을 돌아나가고 있다


*시집/ 나는 불타고 있다/ 파란출판

 

 

 

 

 


목발 - 손석호


절룩이는 톱질
통나무 옆구리가 쓸릴 때마다

팔뚝의 늘어진 근육이 산에 남겨진 벌목지의 뿌리처럼 움찔댄다

시멘트 바닥으로 토해지는 퍼석한 호흡
목공소 공허를 채워 나가고
가끔 팔뚝이 이마를 훔칠 때
톱니가 목장갑을 물고 들어가
시간을 지혈한다

 

오래전 세상을 등지고 거침없이 잘라 내던 그가
벌목장에서 배운 건

자르기 위해선 날을 세워야 하고

잘리는 건 날보다 무르다는 것인데
낯선 아이가 찾아오고
톱밥처럼 눈송이 무겁던 날
안쪽이 날보다 물러졌는지

먼 산을 향해 누군가를 부르다가
메아리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지던 밑둥치를 온몸으로 떠안았다

능선에 켜켜이 쌓아 둔 묵상을 찾듯

도시의 뒷골목에서 아팠던 계절의 층을 켠다

톱날이 주춤거리면 술렁이는 숲의 그늘
외딴 골짜기에 숨어들 동굴을 파듯

구멍을 파내고 숨소리도 스며들지 않게 쐐기를 박는다
오래 자른 자
생각도 토막 나
절룩이며 끝도 없이 잇고 마름질한다
스르륵 미닫이문 열리는 소리

목발이 낡은 발목을 내놓자, 놀란 바람

자르다 만 골목을 버려두고 먼지를 몰고 나간다

 

 

 


# 손석호 시인은 경북 영주 출생으로 1994년 공단문학상, 2016년 <주변인과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나는 불타고 있다>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