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는, 질문으로 가득 찬 계절이다 - 김윤배

마루안 2021. 1. 6. 21:48

 

 

너는, 질문으로 가득 찬 계절이다 - 김윤배


너는, 질문으로 가득 찬 계절이다

너는, 무엇으로 북쪽을 행해 마음 쓸려가는 겨울을 견딜 수 있냐고 묻는다  
너는, 한밤중 바다가 기울며 쏟아지는 눈물은 아픈 봄 아니냐고 묻는다
너는, 불꽃이 시들고 난 뒤에 오는 어둠을 여름 달빛이 건널 수 있느냐고 묻는다
너는, 목숨을 걸었던 언약이 언제까지 가을로 기록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세상은 모르고 너만 알고 있는 절망은 어느 계절이냐고
너는, 국경 흐려지는 지도를 보며 묻는다

세상은 알고 너만 모르는 희망은 어느 계절이냐고는 묻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로
난파의 계절이라 하더라도
죽어서 심장이 살아남는 별
너는, 그 신성을 영원히 이름 없는 별자리로 둘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시집/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 휴먼앤북스

 

 

 

 

 

 

소도시의 우울 - 김윤배


기억은 하루여서 하루는 영원이다

하루 동안 살아 있는 기억 속의 온갖 것들,
진눈깨비 오던 날의 도강이나, 아련하고 조용한 술집이나.
성지의 묵언 행렬이 순차적으로 열린다

지친 육신과 무거운 내일이 불확실한 기억으로 저장 되어 있는

소도시의 감고 있는 눈들이 두렵다
감고 있으나 보고 있는 눈은 몇 대의 차량을 건너
어둠을 핥는 뜨거운 혀와 떨고 있는 손가락의 실루엣을 기록한다
흐릿한 달빛이 골목을 비출 때
인적 끊긴 소도시는 잠시 우울하고
술자리에서 멀쩡하던 정신이 헝클어진다
순간 별들이 마구 흩어지고 나는 허공을 껴안는다
소도시의 보이지 않는 눈들이 수치스런 장면을 기억한다

어떤 불빛이 생의 중심을 치고 나가며
일상의 퇴적을 홑게 될지 모르는 시간이다

 

 

 

 

# 김윤배 시인은 1944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 고려대 교육대학원 및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겨울 숲에서>, <떠돌이의 노래>,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슬프도록 비천하고 슬프도록 당당한>,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바람의 등을 보았다>,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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