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래도, 그 사람이 보고 싶다 - 윤일균

마루안 2021. 1. 2. 21:23

 

 

그래도, 그 사람이 보고 싶다 - 윤일균


노다지다방에 민 양 
낮에는 애비에게 차를 팔고 
밤에는 애비의 자식에게 티켓을 팔았다 
노래방에서 악을 쓰는가 싶더니
어느새 
영춘옥에서 토끼탕을 먹으며 꿩의 소리를 지른다
코르셋, 복대를 누르고 
선술집 젓가락 장단에 팔삭둥이를 낳은 민 양은 
분명치 않은 애비를 근심타가 
낮日 밤月 없던 시간 돌아보며
明이라 성을 붙이는데 
아기는 성대로 밤낮없이 울었다 

핏덩이 물 속에 던지며
새벽이여!
호수여! 
하늘이여! 
입 닫으소서 뒷걸음질에
가물치가 뛰고
황소개구리는 으왱으왱 울었다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마이크를 잡은 여인은
이십 년도 전에 노다지다방
그래, 민 양이다 
화면 이름 明자 선명하다
수양아버지 용왕의 손에는
용궁에 입적하던 날의 사진과 기록
가물치와 황소개구리의 진술 상세하다 
전국에서 전화가 빗발친다 

모두가 애비다 


*시집/ 돌모루 구렁이가 우는 날에는/ 도서출판b


 




나 발과 저 애 손이 마음 너에게 - 윤일균


저 애가 무엇을 잘못 만지였드냐
나는 지금 어데쯤 서 있느냐
너는 너무 힘들어 하지 말아라
생각은 네 운명이라지만
내겐 외딴 절벽을 게걸음치라 하며
저 애는 돌작밭을 헤매라 했다
너의 구구니니한 결정에
우린 시린 길로 쫓기어 구정물이라 불리는 삶이다
외로워하여도
쓸쓸해하여도 말아라
네가 오히려 정점으로 여기면
우리에겐 더욱 고통이였으나
빈 마음으로 달려간 내 위에서
저 애는 살가운 춤을 추었고
네가 부지런을 떠는 날이면
우리는 갈라진 뒤꿈치
찢어진 손가락 사이로 저며 오는 소금끼의
쓰라림 마저도 차라리 행복이었다

힘들어 넘어지면 어찌하겠느냐
이제 우리가 비영비영하면
너라도 말똥말똥해야 하지 않겠느냐




*시인의 말

오던 길 돌아본다.
남은 건
다양한 모양의 상처뿐이다.
오지게 아문 상처 중에
몇은
나름 詩다.

나는 빈 마음으로
곳곳
죽어서도 아물지 못할 상처에서 흐르는 진물을 닦아내며
그 위에 '축복'이라고 썼다.

시집 속에 접힌
턱없는 나의 사랑에
단 한 사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러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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