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음의 방향 - 안상학

마루안 2021. 1. 1. 21:19

 

 

마음의 방향 - 안상학


마음이 몸 안에서 쫓아나가지 않도록 잘 간직할 것

삶이 깊은 바다에 이를수록 고독한 것은 당연하다
고독이 고독하지 않도록
마음의 방향을 내 안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할 것

높은 봉우리에 오를수록 고독한 것은 당연하다
고독이 비참하지 않도록
마음의 방향을 항상 내 안의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할 것

아무리 높고 깊더라도
마음이 절대 내 안을 벗아나지 못하도록
단속할 것 내 안이 우주라고 생각할 것

사랑하라 그렇더라도 지그시 바라만 볼 것
사랑하라 그렇더라도 우두커니 지켜만 볼 것

아픈 것은 상처가 나아가는 과정
머리가 빠개지는 듯 명치를 도려내는 듯
온몸이 부서지고 흩어지는 듯 고통스럽더라도
절대 마음을 몸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마음을 가두어 놓고 살아야 한다
내 몸은 내 몸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 없으니
내 몸은 내 몸을 품어 줄 수도 없으니
몸속 가장 먼 마음에라도 기대며 살아야 한다
그래도 마음이 몸과 한통속일 때 가장 자유로운 법

눈으로 귀로 코로 혀로 손끝으로 달아나려는 마음을
최후까지 불러들여 주저앉혀라 가라앉혀라
달아나는 파도를 끝끝내 불러들이는 수평선처럼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먼 곳 - 안상학


내 몸의 가장 먼 곳이 아픈 것은
내 마음의 가장 먼 곳이 아픈 까닭이다

내 마음의 가장 먼 곳에 가서 하루 종일 간병했더니
내 몸의 가장 먼 곳이 나았다

그 마음의 먼 곳에서 몸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또다시 마음의 먼 곳이 생겨났다
나는 또 머지않아 몸의 가장 먼 곳이 아파올 것을 예감한다

좀처럼 가닿을 수 없는 먼 곳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마음을 살아간다
내 몸의 가장 먼 곳에도 곧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거라는
마음의 일기예보를 예의 주시하는 오늘 밤도 깊어 간다

 

 

 

# 안상학 시인은 1962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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