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오늘은 다르게 - 박노해

마루안 2021. 1. 3. 19:59

 

 

 

박노해의 <오늘은 다르게>는 지난 세기인 1999년에 나온 책이다. 21년이 지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망가진 시국에 다시 읽었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예전에 읽을 때도 그랬도 며칠 전 다시 읽을 때도 그랬다. 박노해는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버리고 스스로 걸어 가시밭길로 나간 사람이다. 투사와 성자의 모습을 함께 간직한 사람이다. 

 

그의 책에 무슨 사족을 붙인단 말인가. 구구절절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읽으며 시대와 불화한 그의 불온한 사상에 깊이 공감한다. 박노해는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지성인이다.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옮긴다. 밑줄 긋고 외우고 싶은 문장이다.

 

*나는 머리만 좋은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보다 중요한 것은 가슴이다. 가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손발이다. 머리를 쓰면 주로 머리만 움직이다. 가슴이 움직이면 머리도 함께 움직인다. 그러나 손발이 가는 곳에는 가슴과 머리가 같이 가게 돼 있다.

 

삶의 현장에서 땀방울을 흘려보지 못한 사람, 고생과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의 한과 서러움을 알지 못하는 엘리트들은 그 내면의 가치 중심이 들떠 있어서 언제 머리가 도는 방향으로 등을 돌릴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성을 평가하는 잣대, 그 사람됨과 인간의 격(格)을 판단하는 단 하나의 잣대를 고른다면 나는 약자에 대한 태도를 들겠다. 자기보다 힘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서로 주고받는 것은 누구나 한다. 

 

문제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 가난한 이웃에 대한 태도, 여성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태도, 그것이 가치관의 핵심이고 인간다움의 중심 잣대가 아니겠는가.

 

밥 한 그릇, 나물 한 젓가락을 먹을 때도 농사 짓는 구릿빛 얼굴 앞에 감사할 줄 아는 감성의 피가 도는 머리라야 사람다운 세상의 설계도를 그려낼 수 있을 게 아닌가. 아무리 최신 정보와 첨단 지식이 21세기를 이끌어간다 해도, 누군가는 뙈약볕 아래 논밭을 기며 밥을 길러 밥상에 올려야 한다.

 

누군가는 지하 막장에서 쇠를 캐고 매캐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이 지구 어느 구석에선가 나 대신 누군가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몸으로 떼워야만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