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굴렁쇠와 소년 - 김재룡

마루안 2020. 12. 6. 22:06

 

 

굴렁쇠와 소년 - 김재룡

 

 

아우는

추운 도시의 뒷골목에

마른 나뭇가지처럼 내동댕이쳐져

자꾸자꾸 쓰러짐에 익숙한

굴렁쇠를 굴린다

 

잿빛 호숫가엔 표박(漂泊)하는 바람들이 걸어 다니고, 안개를 털며 일어선 산, 산맥 밖으로 떠나는데 우리도 실성한 가슴으로 강변을 헤매야 할까.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한기(寒氣)를 비껴갈 순 없을까. 참으면 참을수록 내부로 파고드는, 상(傷)한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바뀌고야 마는, 저 호곡(號哭)을 묻고 또 묻으면, 결국 우리의 가슴은 황폐(荒幣)해져 심장의 똑딱거리는 소리마저 독(毒)을 품게 되지 않을까.

 

가거라

오늘을 사는 눈물로 따스함 없이

시려운 얼굴 끝으로

자꾸자꾸 쓰러짐에 익숙한 굴렁쇠

오늘도 아우는

혼자 사는 방으로

쇳소리를 내며 굴리고 들어온다

 

 

*시집/ 개망초 연대기/ 달아실

 

 

 

 

 

 

슬픈 이름 - 김재룡

 

 

오래된 먼 아주 먼 곳

별에서 왔습니다

지금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당도한 곳

바로 이곳 지금

지구별에서는

어느 곳에서건 늘 슬픕니다

이 별에서 슬픔은 참 참기 어렵네요

 

내 이름은 평화

화산섬에서는 구럼비 바위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는데

이름이 지워지고 있습니다

 

이 별의 한쪽

참 슬픈 날들만 넘쳐납니다

3.8. 4.3. 4.19. 5.18. 4.16

삼백예순날 지워지는 이름이 되어

눈물까지 거세되고 있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아버지 얼굴도 몰라요. 군대에서 총 맞고 돌아가셨대요. 지금 아버지는 한씨고 저는 김가예요. 그래서 나는 지금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오두막 같은 관사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봉급도 여섯 번 받으면 끝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퇴직금 받을 때까지 늘 마이너스 인생이다.

 

필경, 처음이자 마지막일 시집을 묶을 요량이다. 그 동안 쓴 시라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꼴이 될지 모르겠다. 쓸쓸하다.

 

*시 <쓸쓸한 연대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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