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거운 겨울 - 박미경

마루안 2020. 12. 2. 22:04

 

 

무거운 겨울 - 박미경


유방 전문의라면서

왼쪽 가슴을 매끄럽게 읽는다
오른쪽 가슴이 긴장한다 반복하며 읽더니
세로로 1cm 밑줄을 긋는다
밑줄 친 곳 뜯어낸다 또 뜯어낸다 또
겨드랑이에서
네 번이나 더 콕 뜯어낸다
겁먹은 가슴 비늘이 돋아난다
그러고도 몇 년 콕콕 뜯어냈다

몸을 읽는다는 것은
어머니의 어머니 피톨조차 의심하며
과거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것
소심한 며칠
어머니가 짜주던 빵떡처럼
셀 수조차 없는 많은 구멍 속으로
바람이 숭숭 들락거렸다

미래를 읽지 못하는 빗나간 예측
결코 잊을 수 없는데
언젠가는 병이 비밀처럼 스며들 것이라면
했던 말 또 하면서도
당당하게 떼쓰는 노환이라면 싶은
긴장이 오랫동안 머물던 쉰의 한쪽
몹시도 무거운 겨울


*시집/ 토란꽃이 쏟아졌다/ 詩와에세이

 

 

 



해원 - 박미경


늙은 감나무와 말을 주고받는 나이가 되었다

생생하여 마치 어제 같은 일
어미는 나락이 익을 무렵 곧잘 누웠다가도
객귀 물리고 나면 참 잘 나았는데
그 해, 외머리못 얼음이 꽝꽝 얼어도 일어나질 못하고
병원에서도 시원한 병명 찾지 못하니
통 방법이 없는 거라
보다 못해 옆 마을 점쟁이 불러
굿판은 새벽까지 벌어졌는데
그 자리에 쓰러져 구들장 지고 한 달
설움 꾹 참다가 먼 곳으로 떠나버렸지
유복자로 낳은 아들 군대 가 영 돌아오지 않으니
버틸 도리가 없었던 거지

늙은 감나무
노인네 설움 첩첩 혼잣말 오늘도 들으며
적막한 인간사 함께 배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