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알리바이 - 김유석

마루안 2020. 12. 7. 22:19

 

 

알리바이 - 김유석


둥근 벽시계 하나뿐인 방
들보에 목을 맨 사내가 축 늘어져 있다.

발바닥과 방바닥 사이, 천 길 허공을 어떻게 디뎠을까
자살과 타살이 함께 저질러진 듯한,

멎은 시계와
머리카락처럼 흩어진 방바닥의 얼룩은
사내를 살려낼 수 있는 모종의 단서....,

현재의 시간을 맞추자 바늘이 거꾸로 돌면서

얼룩 위에 물방울이 돋고
썩어 가던 냄새가 사내의 몸속으로 빨려든다. 아주 천천히
사내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릴 때까지
딱딱하게 굳어 쌓이는 물의 계단들.

사내의 몸이 모빌처럼 흔들리고

발바닥이 닿자
차갑고 두터운 틀로 변하는 물은
단말마의 전율을 통증으로 바꾸며
어떻게든 살아오게 했던 기억들을 뒤진다.

머리를 묶은 풍선과
가슴속 시든 꽃들,
손가락 새로 빠지는 모래알들.
 
목을 매야만 했던 까닭을 떠올린 사내는
들보의 넥타이를 풀고 얼음 위를 내려와
뒷걸음질쳐 방을 닫는다.

방향을 바꾼 시계가 지루하게 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얼음은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 상상인

 

 

 

 

 

 

마디 - 김유석


망설였던 거다.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밑을 내려다본 흔적,
내리고 싶을 때 내려갈 수 있는
거기까지가 뿌리에 묶인 꿋꿋한 생이었다.

잠자리들 수평을 고르는 그쯤
잎사귀 저어 중심을 솎고
철없는 메꽃에나 감겼으면 사무쳤을 생인데

오를수록 공것 같은 허공,

오르면서 세우는 그만큼의 벼랑을 끼고
휘청거리는 순간순간이 황홀해서
그림자조차 땋을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린 거다.

한 칸 더 쌓으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더 오를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그쯤
어지러운 화관을 틀고

익어야 한다는 건 자기연민의 극,

바람 들어 쑤시는 마디마디
디뎌지지 않는 바닥 헛짚어 기울이며
빼빼 말라가는 수수깡들.

내려오는 길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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