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예술에 있어서 인간적인 것 - 윤유나

마루안 2020. 12. 6. 21:57

 

 

예술에 있어서 인간적인 것 - 윤유나


기다리지 않아도 눈이 오는 건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가 살 수 있는 방법인가
주교가 내 이마에 십자가를 긋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잘린 국화와
꽃말에 뒤섞여 화병에 꽂힌 태양
함께
성가를 부른다

당장 나뭇가지에 영혼을 나누어달라고
사산된 열매를 품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조작해낸다
나뭇잎, 물, 꽃, 우정 모든 언어를 품고 있는
평범한 소외
사람을 만들었지
안수에 씌어진 은총 대신 나는 나뭇가지를 생각한다
시멘트 바닥에서 이유 없이 연명하는
그래, 그게 삶일 수 있어
그런데 다 같이 노래하는 지옥은 왜 필요한가
청바지를 입은 젊은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을 크게 외친다

은총은 정말 청해야지 받을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나뭇가지를 장작불에 던져 넣는다
밤하늘

소리 내어 나를 잡으소서


*시집/ 하얀 나비 철수/ 아침달


 

 



구원투수 - 윤유나


죽은 후에야 '물'자를 붙이는 건데 구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과정이라서
그는 알 수 없는 연도를 중얼거린다
그의 기교 덕분에 그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겁은 가능성인데
물가를 지나칠 수 없는 게 분명하다
가난하고 매혹적인 선생이 저주였다
비명이 유명이라니!

물속에서 나무가 겨우 그를 달래고 있다
죽은 사람이 산으로 가지 않고 있으니 겨울이 폭력밖에 더 행사하겠어

그가 사는 입장료 비싼
물소
물뱀
물개

그는 낯선 곳으로 그만 흘러가고 싶을 뿐이다
그가 고개를 든 채 꼼작하지 않는다
설마, 지금
오이를 던진 건가요




# 윤유나, 1986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낮과 밤이 자주 바뀐다.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를 엮었다. 2020년 이 시집 <하얀 나비 철수>를 내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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