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안부를 묻는다 - 김이하

마루안 2020. 12. 7. 22:02

 

 

안부를 묻는다 - 김이하

 

 

문자로 부고가 오는 아침

남쪽 창으로 들어온 겨울 햇살이

북으로 머릴 뉘인 내 눈을 찌른다

 

어디 기댈 곳도 없는 삶이

그나마 뜨순 방바닥이라도 있으니

위안인가, 눈 감으면 그렁한 눈물

슬그머니 옆으로 새는 한낮

 

어디선가는 가스로 숨이 멎고

또 어디선가는 석탄 운반기에 감겨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나동그라졌다는 시대

무참한 주검이 실려 나가는 시대

그러고도 사람이 귀하다는 시대

 

나는 정녕 살아 있는가

오래 소식 없는 조카는 안녕한가

오래 돌아앉은 벗들은 안녕한가

정말 그런가

 

새벽 창공은 푸르렀으나

이내 찌푸리는 미간(眉間)

내 입으로 얼마쯤 멀어진 그대들 안부를 묻자니

차마 가슴이 떨려 저어하는 사이

술병이 넘어진다, 옛 애인 살던 그쪽으로

 

 

*시집/ 그냥, 그래/ 글상걸상

 

 

 

 

 

 

그냥, 그래 - 김이하


요즘 내가 사는 건, 그냥 그래
가슴에 박힌 큰 말뚝보다 자잘한 가시에 아파하며
막 화를 내고 그래, 입으로 욕도 뱉고 살아
어머님 가시고, 아우도 스러지고
그들의 궤적이 뒤꼭지에 퀭하게 박혀도
아직 견딜 만은 한 거지 

그러다 같이 바라보던 저 꽃 한 송이 때문에
겨울밤 함께 나누던 라면 한 가닥 때문에
온 창자를 토해 버릴 지경이 되는 거지
어쩌다 같이 숟갈 담그던 뜨끈한 고깃국을
한 숟갈 입에 넣다, 울컥하고 말다니
그런 게 환장하는 거지 

엊그제는 이를 닦다 말고 아우 얼굴이
거울에 스치는가 싶더니 앞이 감감하더라고
그새 내 아린 마음 살아 있는 아우에게 갔던지
어제는 내가 저희들 꿈에 두 번이나 다녀갔다고
전화가 오더라고, 그냥 그래 

흐린 저녁 풍경에 잠겨서
왜 이런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이 가을도 더욱 깊어가는 거라는 거
어머니도 아우도 어느덧 까마득한 얼굴이고
사람 빈 자리가 휑한 바다 같고 하늘 같아서
눈 두고 바라볼 곳을 모른다는 거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거, 그냥 그래 

 

 

 


# 김이하 시인은 1959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1989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타박타박>, <춘정, 火>, <눈물에 금이 갔다>, <그냥, 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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