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생은 아물지 않는다 - 이산하

마루안 2020. 11. 30. 19:29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돌림병으로 온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비행기가 멈추면서 항공사와 여행사에서 밥벌이를 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실업자가 되었다. 이 와중에도 가을이 왔고 더디게 왔던 가을도 서둘러 떠났다. 

 

나는 이때쯤이 정서적으로 가장 우울하다. 해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세 번의 고비가 있다. 봄이 꽃샘 추위와 힘겨루기를 하는 3월 말은 비교적 밝은 정서다. 반면 처서 지나 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한 8월 말, 그리고 가을이 겨울에게 밀려나는 11월 말은 우울해진다.

 

딱 지금이 그렇다. 올해는 유독 일찍 겨울이 찾아왔다. 이산하의 산문집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 기간 시를 쓰지 않고 있고 책을 자주 내지 않기에 그의 글은 귀하다. 이산하의 문장에는 기형도의 시를 읽을 때처럼 쓸쓸함이 묻어난다.

 

무거운 주제 때문에 어느 글 하나 그냥 허투로 넘겨지지 않는다. 4.3이라는 상처를 가슴에 담고도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을 여전히 거두지 않고 있다. 이것은 천성이다. 살아 있음이 미안하고 생각하지 않은 죄를 돌아보게 만드는 명문장이 많다.

 

요즘 전직 교수를 비롯해 낄 때 안 낄 때 구분하지 않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양아치로 보이는데 그들은 자신을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진짜 지식인과 가짜 지식분자의 경계는 무엇인가. 이산하는 과연 그들이 진짜 바꾸고 싶은 것일까?라고 물으며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가족을 뺀 현재의 모든 것을 지금 당장 포기할 수 있나?

2. 중산층 이하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폭탄을 안고 불속으로 뛰어들 수 있나?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보나마나 뻔한 내 인생이 참 저렴하고 구리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글을 읽게 해준 이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그의 글에 무슨 사족을 더할 것인가. 여운이 오래 남는 한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나이테

 

흔히 나무의 나이는 나이테로 가늠한다. 그런데 아프리카 같은 열대지방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는 추울 때만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이테는 고통의 나이인 셈이다. 또 나무는 사람처럼 나이를 수직으로 쌓으며 먹지 않고 수평으로 평등하게 먹는다. 그 때문에 사람보다 오래 사는지도 모른다. 

옛날에 궁궐을 지을 때 쓴 나무는 금강송이다. 이 소나무는 춥고 폭설이 자주 내리는 강원도 일대에서 자란다. 날씨가 너무 추워 성장 속도가 느리면 나이테가 촘촘하게 생기고, 나이테가 촘촘해질수록 목질의 밀도가 높아져 나무는 더욱 단단해진다. 다른 나무들보다 어렵고 험난한 성장환경이 금강송이라는 명품 소나무를 탄생시킨다. 그러니까 나이테는 나무가 목숨 걸고 견뎌낸 고통의 상징이다. 

사람의 나이는 고통을 이겨낸 나이테가 아니라 해마다 죽음의 대출금을 상환한 영수증이다. 그리고 ‘인생의 후회’라는 이자는 늘 연체된다. 올해도 본의 아니게 나이를 먹더니 이자율도 높아졌다. 내 몸의 나이테는 촘촘해지지 않고 자꾸만 느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