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저 달, 발꿈치가 없다 - 박윤우 시집

마루안 2020. 11. 27. 21:35

 

 

 

약력을 보고 시집을 선택할 때가 있다. 박윤우 시인은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선생질도 좀 하고 중등학교 미술교사도 했다. 이후 미술학원을 오랜 기간 운영하며 밥을 빌었다. 죄가 많아 시를 쓴다는 시인의 약력이 인상적이다.

 

시집 코너 기웃거리다 우연히 만난 시집이지만 문장에 홀딱 빠졌다. 첫장에 실린 약력을 읽은 선입견 때문일까. 문장 곳곳에서 곱게 늙은 중후함이 느껴진다. 실제 시인은 환갑이 훨씬(?) 지난 2018년에 <시와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늦깎이로 등단했다.

 

그럼에도 오랜 내공 때문인지 시에서 힘이 느껴진다. 운율감이 없는 싯구에서 눈과 입에 착 달라 붙는 밀도감이 찰지다. 쫄깃쫄깃한 시라고 할까. 자신만의 문장력으로 개성을 발휘하며 가독성을 배가 시킨다.

 

처음엔 빠르게 읽었다가 두 번째에 천천히 읽어보면 그 느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시는 반복해서 읽을 때 우러나는 맛이 제맛이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묻히기 아까운 시집이다.

 

평론가들이 좋은 시라고 극찬하는 메이저 출판 시집에서 아무런 감동을 못 느낄 때 절망한다. 내게는 이런 시를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러나 이내 마음을 추스린다. 그래,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내 입에 맞지 않으면 소용 없는 것,,

 

<저 달, 뒤꿈치가 없다>라는 제목에서부터 서정성 짙은 서늘함이 느껴진다. 얼굴 보고 이름 짓는다더니 뒤늦게 신병이 난 무당처럼 늦깎이 시인의 시가 참 좋다. 오래된 다방에서 흘러나오는 탱고풍의 뽕짝 선율을 감지한다.

 

금붕어가 헤엄을 치는 대형 어항이 있고 푹신한 소파형 의자가 놓인 옛날 다방 말이다. 뽕짝 하면 촌스럽고 트로트라 해야 고상한가. 다방은 구닥다리로 밀려나고 외국어 이름 일색인 카페들이 대세다.

 

유행가 흘러 나오던 그 많은 다방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년 퇴직은 고사하고 오십도 되기 전에 밀려나는 세상에서 굳이 꼰대를 자처할 필요는 없겠으나 중후한 촌스러움이 그립다. 여인숙 간판이 보이는 오래된 2층 다방에 앉아 이 시집을 읽고 싶다.

 

 

눈보라 - 박윤우

 

블리자드, 물 건너온 말씀이다 자음동화가 없이도 보드랍다

바람찬 흥남부두에 흰색 한 소절 섞으면 동쪽이든 남쪽이든 눈보라 친다

 

제 무게만큼 고요하고 제 너울만큼 바람이 깃을 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이전부터 눈보라였던, 그 말씀 어디에 가파른 풍경이 도사려서 사납다는 누명을 뒤집어쓰나?

 

아버지의 술냄새 끝, 누수(漏水) 같은 잠결 속으로 막막한 것들이 막막하게 숨어드는데

 

지금 창밖에는 기척 없는 소란, 자세히 보면 모두 관절이 없는 것들, 전신이 통점이어서 낱낱이 흰 것들이다

 

선잠 든 아버지,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넘으시나 굳세어라 금순아를 외치시나 숨소리가 내리 엇박자다

 

전선야곡이 늦은 밤 가요무대를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