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 홍지호 시집

마루안 2020. 11. 28. 19:50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 중에 창비와 문학동네 시집은 가능한 들춰보는 편이다. 들춘 열 권 중에서 두 권은 골라 읽어야지 하는 목표를 세웠지만 번번히 빗나간다. 하긴 내 인생이 어긋남의 연속이었으니 책 읽는 목표 빗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나의 책 읽기는 우물 안 개구리에 수박 겉 핥기 식의 용두사미였다. 한때는 이런 얕은 지식을 뽐내지 못해 안달이 났다. 아는 체를 위해서 때론 과장도 했고 목차만 보고 다 읽은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자랑질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것마저 시들해졌고 나에게 혼잣말처럼 웅얼거린다.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 오십대라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연륜을 믿지 않는다. 그걸 내가 증명하고 있다. 하늘의 뜻을 알고 나서 조만간 귀가 순해져야 할 텐데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기는커녕 위에서 누군가 내 얕은 수를 훤히 꿰뚫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모르더라도 늘 깨어 있기 위해 각성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죽을 때까지 배우겠다는 마음 또한 여전하다. 나의 시 읽기도 일종의 인생 공부다.

 

이 시집은 제목만 보고 골랐다. 처음 보는 낯선 시인인데도 두어 편 읽으면서 바로 빠져들었다. 두어 편 읽다가 약력을 찾았다. 2015년 문학동네로 등단한 홍지호 시인은 1990년 생이나 딱 서른 살이다. 젊은 시인이 놀라우리만치 밀도 있는 시를 쓴다.

 

최소한 마흔은 넘어야 보이는 시를 일찍 알았다고 할까. 랭보처럼 스무 살에도 시는 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시인의 시는 알아 들을 수 없다. 시대 뒤떨어진 이야기인 줄 모르겠으나 BTS가 아무리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날리지만 나는 그들의 노래에 공감하지 못한다.

 

남들이 좋아한다고 억지로 좋아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겠지 정도에서 타협한다. 시 또한 마찬가지다. 평론가들이나 동료 시인들이 추천하는 시집들이 눈으로는 읽는데 바로 다음 연에서 앞의 내용과 연결이 되지 않아 난감하다.

 

반면 홍지호 시는 빨려들어가 읽게 만드는 가독성이 있다.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른 시가 많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시인의 의도가 이해된다고 할까. 시를 읽고 <좋다>라고 했을 때, 어떻게 좋은데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어떤 종목이든 <그냥 좋다>라는 말이 가장 쉬운 평이다. 이곳이 그저 책 읽은 것 자랑할 목적이라면 출판사에서 낸 홍보글 복사해다 붙이면 매일 몇 권도 올릴 수 있다. 꼼꼼히 제대로 읽은 것만 올릴 것, 읽어도 온전히 내 것이 된 것만이다.

 

갈수록 시를 읽고 떠오르는 느낌이 있어도 그걸 문장으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책을 읽어도 담기만 하고 내뱉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공감 가는 시를 쓰는 젊은 시인의 출현이 반갑다. 자주 읽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