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침묵 - 김옥종

마루안 2020. 11. 22. 19:18

 

 

침묵 - 김옥종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참새의 
통곡소리와 어깨 넓은 봄동의 움츠러드는 가슴을 보고서도
그저 너희들끼리 잠시 견디어 내라고, 
사랑하는 일보다 살아가는 일이 더 힘겹게 느껴지는 날에 
가끔은
나를 침묵 속에서 잠방대는 
겨울의 맨살 밖에 
소름으로 방치해두고 싶다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계절도 
오후 한때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으로 
체온을 끌어 올리고 있고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과의 
생채기도 
덧나지 않기 위해 침묵하고 싶다 

그믐에 살이 차오르던 갯가재가 
보름달이 뜨면 왜 살이 빠지는지와 
민들레가 홀씨를 매마른 땅으로 왜 날려 보내는지 
살점을 저며 내며 붉은 심장을 밀어 올리는
동백꽃이 왜 창백한지와 
더듬던 네 속살에 박힌 봄이 
아직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싶다 


*시집/ 민어의 노래/ 휴먼앤북스

 

 

 

 

 

 

춘수락(椿首落) - 김옥종 


나의 유통기한을 셈하며 
사십도 짜리 방부제를 혈관 깊숙이 밀어 넣던 밤 

동백의 
주검들을 수습해 모닥불 위에 눕히고 
불을 댕겨 진혼곡을 불러주자 
침묵 속에서 목 놓아 울더니 

몸뚱이를 으깨고 
노오란 영혼의 심지에 불이 옮겨 붙자 
발성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었다 

죽도록 사랑해서 
견딜 수 있었지만 

목을 꺾어도 
내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 김옥종 시인은 1969년 전남 신안의 섬 지도에서 출생했다. 2015년 <시와경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민어의 노래>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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