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 김옥종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참새의
통곡소리와 어깨 넓은 봄동의 움츠러드는 가슴을 보고서도
그저 너희들끼리 잠시 견디어 내라고,
사랑하는 일보다 살아가는 일이 더 힘겹게 느껴지는 날에
가끔은
나를 침묵 속에서 잠방대는
겨울의 맨살 밖에
소름으로 방치해두고 싶다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계절도
오후 한때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으로
체온을 끌어 올리고 있고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과의
생채기도
덧나지 않기 위해 침묵하고 싶다
그믐에 살이 차오르던 갯가재가
보름달이 뜨면 왜 살이 빠지는지와
민들레가 홀씨를 매마른 땅으로 왜 날려 보내는지
살점을 저며 내며 붉은 심장을 밀어 올리는
동백꽃이 왜 창백한지와
더듬던 네 속살에 박힌 봄이
아직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싶다
*시집/ 민어의 노래/ 휴먼앤북스
춘수락(椿首落) - 김옥종
나의 유통기한을 셈하며
사십도 짜리 방부제를 혈관 깊숙이 밀어 넣던 밤
동백의
주검들을 수습해 모닥불 위에 눕히고
불을 댕겨 진혼곡을 불러주자
침묵 속에서 목 놓아 울더니
몸뚱이를 으깨고
노오란 영혼의 심지에 불이 옮겨 붙자
발성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었다
죽도록 사랑해서
견딜 수 있었지만
목을 꺾어도
내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 김옥종 시인은 1969년 전남 신안의 섬 지도에서 출생했다. 2015년 <시와경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민어의 노래>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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