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을에서 봄에게로 - 이태관

마루안 2020. 11. 21. 19:56

 

 

가을에서 봄에게로 - 이태관


이슬이 눈물이었다는 듯
떨어져 내리는 낙엽, 그 순간의 무게가
가을을 저물게 한다

눈 뜨는 햇살은
그 눈물 불러 모으시는 어머니
밤새 가라앉은 고요가 서서히 풀려나온다
허리 펴는 강물 위로 안개 자욱하다

무겁던 나무 그늘 사이로 햇살 보이면
얽히고설킨, 겹치고 겹친 생의 이면이
조금은 환하다

흰머리 늘고 머리카락도 조금은 느슨해지는 시절
비로소 사람을 안다
보지 않으려 해도 바로 보인다
주름과 살에 한 생이 담겨 있다

나와 닮은 이여 평안하시라
쑤시는 삭신 고달픈 몸을 지나
꿈에서라도 행복하기를
그리고 흰 눈 내리는 날
두 발길이 하나가 되어

새순 돋는 추운 계절에
그대 입술에 닿는 그해 마지막
흰 눈송이이기를


*시집/ 숲에 세 들어 살다/ 달아실


 

 



침향 - 이태관


저 나무,
가지에 새를 들이고
바람과 비와 어머니의 어머니
그 눈물 맞으며 살아온 세월이 천 년이란다
그 속을 어찌 다 안다 이야기하리

사랑은 바위와 같아
묵묵한 기다림의 한 생이고
짭짤한 눈물 서 말가웃은 될 터이나
천 년이란 기다림은 어찌 읽어야 하나
천 년 후의 이에게 마음 전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그대에게 보내는 이 편지가 언제쯤 도착할지
바람이 허공에 새겨 넣은 말
비록, 바닥에 떨어져 쓸쓸히 썩어갈지라도
그 그리움 온전히 전해지기를
그 향기 오래오래 기억하기를

 



*시인의 말

모든 시간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지 못하는 그곳에

내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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