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건강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마루안 2020. 11. 11. 22:25

 

 

 

드디어 배신 시리즈가 또 나왔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늘 좋은 책을 낸다. 예전에 읽은 노동의 배신은 추천하고 싶은 명저다. 그 외 희망의 배신 등을 써서 나를 매료시켰다. 이 책도 좋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하는 힘은 저자의 문장력에 있다. 문학적인 아름다운 문장이 아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이다.

 

교양서란 바로 이런 책이다. 내용, 디자인, 적당한 책값 등이 잘 조화를 이뤄 돈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저자는 1941년 미국 출생의 여성 작가다. 세포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도시 빈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NGO에서 일하다가 전업 작가로 나섰다.

 

신자유주의 시대 빈곤 문제를 다룬 노동의 배신을 시작으로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명저를 남겼다. 있는 자, 가진 자, 배부른 자에겐 두려운 저격수. 없는 자, 못 가진 자, 배고픈 자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의 전형이기도 하다.

 

자신이 경험한 유방 조영검사를 시작으로 의례가 된 의료 행위를 줄줄이 소환한다. 저자는 의사들의 과잉 검사 권유와 과잉 진료를 비판하고 있다. 치과를 방문할 때마다 매번 엑스레이를 찍는 것도 찜찜하다고 했다. 왜 다량의 방사선에 입을 노출시켜야만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과연 치과 방문자 중에서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녀의 경험에 의하면 치과 의사가 수면 무호흡증 검사를 받으라 했단다. 수면 센터에서 검사가 끝나자 의사는 추가 진료를 권유하면서 환자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당신은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이 책의 부제가 <무병장수의 꿈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인 이유를 절실히 공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세포생물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이 책에서 면역에 관여하는 다양한 세포 역할을 알려준다. 여드름에서 관절염까지 좋은 세포의 역할이 대단하다. 

 

오래는 살고 싶은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이다. 저자는 수명 연장에 따른 대가는 인생 말년에 높은 비율로 장애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하자 보증도 없다. 누구나 목표로 삼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산 뒤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죽는다는 희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운동을 위해 부지런히 헬스클럽에 나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서도 걷기가 싫어 가능한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3층을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운동 후에는 맥주로 갈증을 해소하면서 치킨을 먹는다.

 

그래봤자 운동 효과는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게으른 자는 그럴지 모른다. 저자는 가능한 많이 움직이라고 말한다.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가 하지 말하야 할 일 중 하나는 가만히 앉아 건강한 노화에 관한 책을 읽는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한다. 1956년 브레히트는 자신이 임종하는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이 시를 썼다. 좋은 책을 읽은 뒤에 마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오늘도 나의 일상은 실천하는 미니멀리즘이다.

 

자선병원 하얀 병실에서

아침 무렵 일어나

자빠귀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알았네.

이미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음을.

내가 만약 없어진다면

내게 아무것도 잘못될 것은 없을 테니.

이제 나는 즐길 수 있게 되었네.

내가 떠난 뒤에도 계속 울려 퍼질 지빠귀의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