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정치의 품격 - 정도상

마루안 2020. 11. 6. 22:15

 

 

 

소설가 정도상의 책이다. 지금은 소설을 거의 안 읽지만 예전에 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을 때 정도상의 소설 <친구는 멀리 갔어도>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꽤나 인상 깊은 소설이었음은 확실하다. 

 

작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의 아픈 주제를 가지고 선이 굵은 소설을 많이 남겼다. 대중적이지 않은 소설이지만 오래 기억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소설은 아니고 세종실록을 바탕에 깔고 세종의 통치에서 발견한 정치의 품격을 말하고 있다.

 

품격은 일상에 자주 쓰는 단어다. 신사의 품격, 아버지의 품격, 나라의 품격 등 어디에 갖다붙여도 고상한 말이 되는 단어다. 정치의 품격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가장 어려운 것이 정치의 품격 아닐까. 정도상 작가는 세종에게서 정치의 품격을 발견한다.

 

세종 이후 오랜 기간 실종된 정치의 품격을 저자는 2016년 촛불 혁명 이후 다시 발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장에서 짐작을 했다. <대통령이든 왕이든 국가의 지도자로서 성군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덕목이 필요한 것일까? 물론 지도자가 반드시 성군일 필요는 없다. 성군이 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인류사를 통틀어도 성군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성군이 귀하다고 하여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군이 되는 첫 번째 덕목은 슬픔이다. 슬픔도 그냥 슬픔이 아니라, 슬픔을 끌어안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슬픔이란 백성의 슬픔을 말한다. 슬픔의 핵심은 국민과 함께 사는 것에 있다>.

 

저자는 두 번째 덕목은 공부라고 했다. 벼락치기 공부가 아닌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공부다. 세종은 역대 왕 중에 단연코 공부를 많이 한 통치자다. 세종의 종합적인 공부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한글이다. 지구상에는 자기 글을 가진 국가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저자는 세종과 정조를 비교해서 통치 이념을 다루기도 한다. 정조 또한 세종 못지 않은 유능한 왕이었지만 정치의 품격에서는 세종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세종에 대한 인문학적 평가는 많지만 저자는 조선 유일의 이단적 군주가 세종이라고 말한다.

 

많은 학자들이 앞으로의 인류사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 말한다. BC와 AC의 뜻이 이제는 코로나 이전을 Before Covid-19(BC)로 코로나 이후를 After Covid-19(AC)로 분류할 것이라 했다. 

 

이 장에서도 저자는 세종실록에서 전염병에 대처한 세종의 정치를 소환한다. 기득권층의 시각이 아닌 고통 받는 백성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세종의 통치를 조목조목 언급한다. 일찌기 경험해 본 적 없는 코로나 시대가 이렇게 길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얼굴을 가려야하고 사람과는 가능한 거리를 두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 되었다. 그나마 모범적인 방역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안정적이다.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 지 알 수 없으니 한동안 With Covid-19(WC)가 불가피하다. 정치의 품격이 더욱 절실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