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나리꽃이 내게 이르기를 - 정기복 시집

마루안 2020. 11. 8. 19:47

 

 

 

지나쳤던 시집을 다시 만났다. 시집 고르는 내 안목을 비교적 신뢰하는 편인데 놓친 시집을 다시 만났을 때는 내 선입견을 반성한다. 지나치게 제목에 집작하는 것도 있다. 서점에 가지 못할 때 출판사 홍보 기사만 보고 덥썩 주문할 때도 있다.

 

별로 공감이 안 가는 내용물 부실한 시집을 만날 때는 내 선택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남의 추천을 참고할 필요는 있어도 서평이나 보도에서 어렵게 설명한 책은 펼치고 난 후 대부분 후회를 한다. 그래서 스스로 꼼꼼하게 골라 천천히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이 책은 올 봄에 우연히 헌책방에서 만났다. 어디에서든 꽂혀 있는 시집은 가능한 펼쳐 보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맨 앞에 실린 시인의 말을 읽고는 바로 결정했다. 딱 절반 값에 산 새책 같은 헌책이다. 누가 이렇게 깨끗하게 읽고 나를 위해 헌책방에서 만나게 했을까.

 

<어린 시절 자다 깬 한낮 대청마루에, 봉당에, 마당가에, 싸리울에, 초가지붕에 쏟아지던 햇살은 살을 베듯 눈이 부신데 엄마도 누나도 뵈지 않고 낯설고 외롭고 슬퍼지고 막막하여 왈칵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 -시인의 말.

 

아! 어쩌면 내 어릴 적 경험과 이렇게 일치한단 말인가. 마루에서 강아지와 놀다가 지쳐 잠이 들었던가. 마당에 가득 찬 햇살은 눈이 부신데 아무도 없는 적막함에 울음부터 터졌다. 유독 어릴 적 기억이 없는 편인데도 50년이 넘은 이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가난이 사무쳐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골목도 싸리울도 빨랫줄도 아파트가 주택의 대세가 되면서 모두 사라진 유물들이다. 사람이나 시집이나 만날 인연은 이렇게 언젠가는 끈이 닿는다. 좋은 시집을 만난 기쁨이 크다.

 

내가 이 시집으로 시인을 처음 만난 것처럼 정기복 시인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이 책이 첫 번째 시집을 내고 20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시집에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시인의 진정성이 담긴 시가 깊은 감동을 준다.

 

비록 시는 많이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냥 살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현재 택시 운전사다. 시집 마지막에 실린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 가고 싶다>라는 제문 형식의 시가 무척 인상적이다. 백석의 시 제목을 빌려 시인은 생명을 사랑하는 진정한 평화주의자임을 알게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압축한 듯한 이 시에서 시인은 1965년 출생이고 2016년에 처음 개인택시를 운행했음을 알았다. 틈틈히 산을 오르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상도 시집 곳곳에 박혀 울림을 준다. 늦게 알았지만 좋은 시집을 읽은 뒤가 뿌듯하다. 마지막 이 시의 일부다.

 

<제 바퀴에는 육신도 혼백도 차별 없이 탑승하게 하시며 슬픔도, 기쁨도, 이별도, 만남도 때 없이 타고 내리게 하십시오.(...) 돈을 보기보다는 간절함을 보고, 여유로운 자를 태우기보다는 시급한 이를 태우고, 노인과 어린이와 약자가 원할 때는 운임 없이도 이 바퀴가 기꺼이 굴러갈 수 있게 하십시오. 어두운 귀갓길에 모든 이의 편안한 세단이게 하십시오>.

 

지난 인생 돌아 보면 어느 누군들 열심히 살지 않았으랴. 버릴 것 없이 깊은 울림을 주는 시집에서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숨어 있든 삐져 나오든 좋은 시는 발견해서 내 것으로 만든 시다. 이 시집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