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독립출판의 왕도 나의 작은 책 - 김봉철

마루안 2020. 11. 15. 19:48

 

 

 

얼마전에 헌책방에서 이 사람의 책을 처음 만났다.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다. 내 인생이 저렴하기 짝이 없는 삼류 인생이라 이런 책 제목이 눈에 더 들어온다. 책의 외관이 다소 성의 없어 보였지만 제목 때문에 읽은 것이다.

 

오래전에 일기처럼 끄적거린 내용인데도 공감이 갔다. 대번에 외로움 타는 사람이 쓴 글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글을 읽으며 몇 가지 촉이 왔다. 김봉철도 본명이 아니겠구나. 사연도 조금 각색을 했겠구나.

 

인연이란 게 묘해서 몇 달 후에 헌책방에서 <숨고 싶은 사람을 위하여>를 발견했다. 같은 사람인 줄 모르고 제목 보고 골랐는데 김봉철의 책이다. 책도 내용물도 조금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픽션을 보탰겠지만 여전히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 글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서점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가려다 이 책은 후기를 쓰고 싶었다. 여전히 그는 직업이 없는 백수다. 30대 중반을 넘긴 백수가 먹고 살기 위해 책을 냈다. 그동안 독립출판으로 낸 책들이 반응이 좋았던지 이 책은 출판사 수오서재에서 나왔다.

 

출판사 수오서재는 나름 좋은 책을 내려고 노력하는 출판사다. 저자가 이전에 낸 책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던 책이다. 이 책은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출판이 어떤 것이고 혼자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다. 일종의 먹고 사는 방법을 안내하는 처세술 책이라 해도 되겠다.

 

책이 안 팔려서 출판계가 불황이라는데도 책은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갈수록 대형 출판사에서 낸 책이 아니면 독자의 눈에 띄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저자는 드디어 자신의 책을 내자고 하는 출판사를 만난 것이다.

 

이 책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루저였다. 어렸을 때부터 컴플렉스에 시달렸다. 숫기가 없어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술도 잘 못마신다. 이런 사람을 흔히 사회부적응자라고 부른다. 실제 저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서른이 넘도록 변변한 직장 없이 놀았다. 보통 놀았다고 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도 가고 사고도 치고 했을 법하지만 그렇게 논 게 아니라 방안에서만 놀았다. 이런 사람을 히키코모리라 하던가. 그가 가졌던 직장이라곤 인력사무소를 통한 일용직이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저자가 몇 달 동안 직장을 다니긴 했다. 안경렌즈 유통 업체와 고객센터 전화상담원이다. 굼벵이가 뒹구는 기술이 아닌 다른 일로 먹고 살려는 소극적 투쟁에 공감이 간다. 죽도록 일해서 먹고 산다는 사람이 많지 않던가.

 

김봉철 작가는 독립 출판계에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유명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을 알리기 위해 발로 뛰며 노력한 결과다. 당연 독자를 빨아들이는 글발과 공감이 가는 내용물은 필수다.

 

낭중지추라는 사자성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은 언젠가 빛을 보기 마련이다. 이 책에 아주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고객센터에서 근무할 때 회사에서 슬로건을 공모했는데 저자가 뽑혔다. 투명인간 취급했던 사람이 묻는다. <슬로건 쓰신 분이라면서요? 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셨나요? 아뇨, 고졸인데요>. 이것이 바로 낭중지추의 진면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