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 양상규

마루안 2020. 11. 3. 21:56

 

 

 

작년 가을 경주에 갔을 때 이 서점을 갔다. 책을 사러 간 게 아니라 그냥 황남동 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북적대기에 잠깐 기웃거려 봤을 뿐이다. 들어가진 않았다. 이런 서점이 내 취향도 아닐 뿐더러 서점엔 책 사러 가는 곳이지 사진 찍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행을 갈 때면 꼭 시집 한두 권은 챙긴다. 나의 여행은 걷는 경우가 많다. 경주 여행도 가능한 걸었다. 명소가 많은 경주지만 걸을 때만이 보이는 풍경이 있다. 걷는 여행에는 최대한 배낭이 가벼워야 하기에 단추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여행길 동행 책은 단연 얇은 시집이 최고다. 무게도 덜 나가고 반복해서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 여행길 내내 한 시인의 시에 푹 빠질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당연히 꼼꼼하게 고른다. 싯구에 깊이가 있을 것,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등이다.

 

여행지에서 서점이 보이면 들어가 본다. 딱히 책을 사기 위함보다 그곳 문화에 젖어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어서어서도 그랬다. 여행길에 책 사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곳의 책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런데 현지인보다 외지인이 바글바글해서 들어가려다 말았다.

 

이 책을 보고서야 이 책방이 그때 봤던 서점이란 걸 알았다. 내 취향의 서점은 아니지만 독특한 아이디어로 성공한 책방은 응원을 한다. 책에도 나오지만 이 서점이 잘 된다니까 모방을 하고 심지어 지인 사칭까지 하는 장사치 서점도 생겼다.

 

저자는 책방을 차리기 전에 몇 개의 직업을 가졌다. 사진기사, 지역은행 직원, 댄스 강사를 거쳐 식당까지 운영했다. 이 책은 그런 직업을 거쳐 책방을 개업해 경주의 대표 독립서점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겼다. 시를 많이 읽은 탓인지 글발이 아주 좋다.

 

첫장부터 흡인력 있는 문장 때문에 책 속에 빠지게 만든다. 서점도 성공했지만 이 책도 잘 팔렸으면 한다. 성공담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전파사로 말이다. 저자는 넉넉치 않은 집안 사정을 고려해 장학금을 받는 지방의 국립대를 나왔다.

 

그는 경주에서 자고 나란 토박이다. 모두 서울로 몰려가는 판에 고향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자리 잡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냥 앉아서 책이 팔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고객을 위해 아이디어를 개발한다. 책을 읽으면 이 사람의 영업 방침에 저절로 설득이 된다.

 

있는 자금 탈탈 털어 개업한 치킨집 사장인들 성공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 서점 주인은 프로 냄새가 난다. 꼼수 부리는 영업 기술이 아닌 장사꾼과 생활인의 진정성이 보인다. 이 책방뿐 아니라 어떤 자영업을 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책방 해서 재벌 될 일은 없겠으나 성공한 업소 하나 생기면 우르르 몰려가 유사 업소가 난무하는 것이 그동안의 현상이었다. 그러다 이태원 경리단길처럼 임대료가 오르고 견디지 못한 업소가 하나둘 떠나면서 썰렁해진 곳이 여럿이다. 

 

저자는 바로 옆에 책방이 생겨도 상관 않겠다고 했지만 황리단길이 이런 절차를 밟을까 걱정이다. 30년 전과 비교는 무리지만 불과 십년 전까지 황남동은 조용히 걷기에 좋은 한적한 동네였다. 반짝 했다 사라진 음식 유행처럼 주목 받다 사라지는 곳이 아니길 바란다.

 

이 서점의 아쉬움이라면 동네 서점인데도 외지인 손님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동네 서점은 근동에 사는 동네 사람이 주고객이어야 진정한 동네 서점이다. 이 책은 직장인의 애환과 자영업자의 영업 방침과 점쟁이의 미래 예측에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거기에 맞는 한 사람의 문화생활까지 종합세트처럼 들어 있는 책이다.

 

서점 주인이자 교양 있는 자영업자의 일상이 흐뭇해지는 대목이 있어 옮긴다. <미각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음식 투정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커피만큼은 아니다. 맛있는 커피만 마시기에도 하루가 부족하고 인생이 짧다. (...) 밥은 건너뛰더라도 커피만큼은 꼭 마셔야 한다. 하루의 오아시스랄까. 커피가 한 방울도 없었다면 어서어서에서일지라도 조금은 팍팍했을 것이다>. 책방뿐 아니라 자영업자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