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착취도시, 서울 - 이혜미

마루안 2020. 11. 1. 19:23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가 쓴 책이다. <착취도시, 서울>이라는 강렬한 제목이 끌리기도 했지만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주거 문제를 다뤘기에 흥미롭게 읽었다. 궁둥이로 쓴 책이 아닌 발로 쓴 책이어서 더욱 생생하게 읽힌다. 가난한 사람의 주거문제 내막을 제대로 파헤쳤다.

 

지옥고라는 말이 있다. 빈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합친 말로 주거환경이 열악한 주택을 일컫는다. 복지 차원에서는 개선이 되어야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곳마저 없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라면 박스 들고 서울역 지하도로 가야만한다.

 

가령, 창문도 없는 좁은 고시원이 월세 25만 원이라 치자. 최저 주거 복지를 위해 창문을 달고 방도 조금 넓혀서 35만 원을 내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씨구나 반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라리 환경이 열악해도 더 저렴한 방을 원한다. 십분 공감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도 들여다 보면 싼 방값 대신 열악함을 견디다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곳에서도 창문이 있어 조금 비싼 방에 거주한 사람은 살아 남았다. 그럼에도 화재가 비켜가길 바랄 뿐 가능한 싼 방을 선호하는 실정이다.

 

이 책은 그런 곳에서 살며 생존하는 사람들의 뒷면에 착취 세력이 있음을 파헤쳤다. 서울에는 몇 곳의 쪽방촌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샤워실도 없는 좁은 방에서 보일러도 없이 겨울을 난다. 월세에 관리비가 포함되기에 주인이 전기 제품마저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한다.

 

쪽방의 평균 월세가 23만 원인데 평당 가격으로 계산하면 고급 아파트인 타워펠리스보다 비싸다고 한다. 대부분 쪽방 건물은 개발을 노린 투기꾼들이 소유하고 있다. 건물주가 직접 관리하지 않고 재임대 형식의 관리인에게 맡겨 수익을 올린다.

 

월세 23만 원을 받으면 10만 원은 건물주에게 주고 13만 원을 관리인이 갖는 방식이다. 물세, 전기세 등 각종 비용은 재임대한 관리인이 내야 하기에 당연 짜게 굴 수밖에 없다. 고장난 보일러도 안 고쳐주고 행여 전기를 많이 쓸까 늘 감독을 한다.

 

사는 사람은 행여 쫓겨날까 관리인 눈치를 보며 이런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 가령 30개의 쪽방이 있는 건물주는 매달 3백만 원을 현금으로 가져가니 세금도 안 낸다. 재개발을 기대하며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닌 알박기 겸 부수익도 올리는 알짜배기 투자처다.

 

대학가의 신쪽방촌도 다루고 있다. 한 가구만 산다고 신고한 주택에 몇 개의 방을 조각조각 나눠 임대를 하는 것이다. 대학가에는 이런 형식의 원룸이 많은데 저자는 한양대가 있는 사근동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은밀한 쪼개기도 기발한 돈벌이다.

 

지역 주민이 살던 집을 비우고 몇 개의 방을 늘려 수입을 올리는 것은 그래도 양반이다. 외부인이 건물을 매입해 아예 성냥값처럼 몇 십 개의 방을 쪼개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구청에서 불법을 고발해도 있으나마나한 솜방망이 처벌이다.

 

이곳 주민들은 한양대가 부족한 기숙사를 건립하겠다고 하자 결사 반대를 하며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여 기숙사 건립을 무산 시켰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니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은 비싼 주거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싼 방을 찾지만 생활비 절반 이상이 주거비로 들어 간다. 고시원보다는 낫더라도 양팔을 뻗으면 벽에 거의 닿을 정도의 좁은 방이다. 심지어 침대에 앉아 씽크대에 손이 닿는 곳도 있다. 이런 열악함에 비해 건물주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주거 빈곤 해결책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열악한 주거지역을 없애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 반지하보다 옥탑방이 낫고 고시원보다는 대학가 원룸이 낫다. 그러나 착취 세력이 조금만 욕심을 줄이면 가난한 사람들의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확실하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