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풍경에 속다 - 김정수

마루안 2020. 11. 6. 21:37

 

 

풍경에 속다 - 김정수


오죽 못났으면
허공벼랑에 매달린 배후일까

범종도 편종도 아닌 종지만 한 속에서
소리파문 파먹고 사는

주춧돌 위 듬직한 기둥이나 들보 서까래도 아닌
추녀마루 기와의 등 타고 노는
어처구니 잡상만도 못한

항상 바람과 놀고 있는 풍경은 무상이려니
눈곱때기 창이나 벼락치기 문이려니

오죽 힘들었으면
죽음 끝에 매달려 살려 달라
살려 달라 스스로 목을 맸을까

10년 행불 소리 소문 없이 보내고 보니
어딘가 끝에라도 매달려 손등 문지르고 싶은

숨과 숨 사이

진짜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바람에 풍경 들여 불이었음을

같은 것 하나 없는
빠끔, 원통인 것을


*시집/ 홀연, 선잠/ 천년의시작

 

 

 

 

 

 

담쟁이덩굴, 화사한 - 김정수


요양병원 창가에서 가을의 휴일을 보네
바위의 손등으로 화사 한 마리 기어가네
새들의 하늘 고요하네 더딘 죽음 오후에 새기지 않으리
잠잠한 바람 불러들여 붉은 잎 흔들고
흔들리네 반쯤 죽은 오동나무 창밖에 비스듬하네
햇살을 자른 유리의 지문 선명하고도 선연한 한낮
애써 곁을 내준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조차 않는 당신의 흐린 눈빛
외면하고 커튼 뒤로 거처를 옮긴 거미 한 마리
살려 보내는 것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방심 불러들이는 것
바위 위에 고인 화사한 시간 방해하지 않고
사람 곁으로 떠나가는 것 하루의 하루
침상에 남겨 둔 채 먼지 속으로 침잠하는 것
다시는 들춰보지 않을 가계에 당신을 유폐시키는 것
의자의 발목 톡톡 건드려 잠든 통증 깨우는 것
오동나무, 그 절반의 절박한 삶 훔쳐보다 들키는

기껏,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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