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외버스터미널 - 박철영

마루안 2020. 11. 3. 19:23

 

 

시외버스터미널 - 박철영

 

 

비라도 오는 날이면 허리 통증이 도지듯
누군가를 떠올리며 간절해질 때가 있다
오랜 유물 같은 소읍(小邑)의 시외버스터미널은
빗물에 퉁퉁 불은 추억을 들이민다
의자처럼 말 없던 사람들 잃어버린 차표를 찾듯
가슴에서 몽글대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떠나버린 차표를 손에 쥐고
다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듯
보따리에는 찾아가지 못할 주소가 빼곡하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
기어이 추억을 터뜨리고 말지만
오래전 떠난 친구 소식은 없다

 

 

*시집/ 꽃을 전정하다/ 시산맥사

 

 

 

 

 

 

만국(滿菊) - 박철영

 

 

가을이다,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계절이 왔다
등 뒤로 축축이 젖어 눈물 같던
시간은 다 말라버린 채
이제 남은 것은
다들 외면하고 에돌아가는
상엿집이 있었다는 동청처럼
써늘한 그림자가 세 들어 산다는 집
빨간딱지를 붙여도 철거될 수 없는
불면 가득하다, 이제 누구라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빨간딱지 대신 폐문이라고 써 붙여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폐문이라는 문패도 필요 없게 될 추억 속
가을은 또 올 것이다
차압 당한 계절을 돌려받을 수 없어
되돌아가야 하는 사람 속에
흔히 있을, 손 흔들어주는 사람이
될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가을밤이 몹시 싫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경에 속다 - 김정수  (0) 2020.11.06
옛 편지 - 허림  (0) 2020.11.03
가창력 - 홍지호  (0) 2020.11.02
누군가가 떠나갔다 - 김종해  (0) 2020.11.02
지나가는 바람 - 이병률  (0) 202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