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창력 - 홍지호

마루안 2020. 11. 2. 22:03

 

 

가창력 - 홍지호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노래를 못한다네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지만
노래를 부른다고 모두 가수가 될 수는 없다네

노래는 노래를 낳지만
가수가 가수를 낳는 건 아니라네

호흡
호흡이 찗은 그는 자주 숨을 쉬어야 하며
선곡
언제나 저음과 고음이 많은 어려운 노래를 고른다네
한 번도 노래를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다네

히트곡
아무도 그의 노래를
기억하지 않는다네 다만
그는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가수고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네

무대에서
떨고 있다네
떨림만이 그의 노래를 지탱하고 있다네 떨림으로
밴드는 멈추지 않는다네
노래한다네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노래를 못한다네
그것은 슬픈 일이라네

그것이 슬픈 일인 이유는
노래가 끝나도 아무도 박수치지 않아서
앙콜을 외치지 않아서도 아니라네

노래를 못하는 그에게도 노래가
전부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도

노래가 끝나고 그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울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라네
내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네

언제나 누군가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네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문학동네

 

 

 

 

 

검은 개 - 홍지호


개들에게 물어볼 수 없다 정말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인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앉아서 새가 내는 소리와 공사장에서 공사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말 미안한 일이 있었다
어릴 때 생활이 어려워져서

키우던 개를 시골 할머니 댁에 두고 온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검은 개를 묶어 키웠다

검은 개가 죽고 나서 나는 대학에 갔다
겁이 많은 아이였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검은 개가 죽었다는 것은 전화로 들었다
검은 개를 두고 올 때 차를 타고 떠나며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도

너를 두고 왔다 겁이 많은 너를 돌아보지 않았다
개가 짖으니까 다른 개들이 같이 짖는다

잊지 않을 거라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가끔씩 생각날 거라는 말은 진심이 된다
나는 순수했던 적 없다는 말도

검은 새가 대신 울어주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될 수 있다
개들에게는 물어볼 수 없다

아침이라 공사가 재개되었다

간밤에는 정말 미안한 일이 많았다



 

# 홍지호 시인은 1990년 강원도 화천 출생으로 2015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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