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 안상학 시집

마루안 2020. 10. 28. 22:16

 

 

 

안상학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 그간 시집 내는 주기를 알기에 조만간 나오겠지 하며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 시집도 실천문학사에서 나올 거로 봤는데 <걷는사람>이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출판사는 이름도 특이하지만 좋은 시집을 많이 낸다.

 

시집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찾아 나서야 연결이 된다. 출판사 걷는사람과는 비교적 연이 잘 닿는 모양이다. 안상학 시집이 여기서 나온 스물일곱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첫 인연을 못 잊는 성격 탓이다.

 

그러나 출판사가 시기에 맞춰 시인 선정을 잘 하기에 이런 인연도 생긴다. 누구의 추천이나 광고는 참고만 할 뿐 스스로 찾아 나서 책을 고른다. 안상학 시집은 망설이지 않고 골랐다. 기다렸던 시집이기도 하거니와 평소 그가 어떤 시를 쓰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안동엘 갔다. 해마다는 아니지만 정해진 여행지가 없을 때 안동을 간다. 무작정 가도 좋은 곳, 어디를 봐도 좋은 곳, 이전에 갔던 장소도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곳이 안동이다. 나이 드신 분들의 토박이 말을 잘 못알아 들을 때가 있지만 문제 되지 않는다.

 

안동에 머물면서 안상학 시인을 떠올렸다. 밑도 끝도 없는 발상이지만 전화 해서 술 한 잔 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시인이다. 심오한 문학 이론을 논하지 않아도 그저 날씨 얘기만 해도 좋을 사람, 코스모스가 너무 가냘퍼서 슬프다는 걸 아는 사람일 것 같다.

 

어떤 얘기에서 시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질까. 이 시인은 천성적으로 고독을 담고 산다. *마음이 몸 안에서 쫓아나가지 않도록 잘 간직할 것// 삶이 깊은 바다에 이를수록 고독한 것은 당연하다/ 고독이 고독하지 않도록/ 마음의 방향을 내 안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할 것// *<마음의 방향> 일부

 

맞다. 고독은 바닥이 안 보이는 우물처럼 깊은 곳에 있을 때 제대로 숙성된다. 시집 곳곳에서 시인이 간직한 고독을 감지할 수 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고 그 상처로 인한 슬픔이 시인을 살게 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픈 것은 상처가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몽골 소년의 눈물이 시인의 눈물이기도 하다. 시인은 사막의 한 줌 낙타 똥 같은 마을에서 만난 한 소년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한다. 자신을 두고 떠나는 할아버지와 헤어짐이 절절하게 다가와 가슴이 서늘해진다.

 

*발을 동동 구르며 마구 허공을 할퀴던 조막손 소년은/ 마을 어귀 모래언덕까지 올라가 한참을 바라고 서 있었다/ 몽골은 눈물이 드물다는데/ 소년의 눈물/ 광막한 곳에서는 헤어지는 시간도 길었다// 지금 여기 없는 꿈이/ 지금 여기 있는 아픔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몽골 소년의 눈물> 일부

 

이 풍경을 상상하며 막막한 슬픔이란 게 바로 이거구나 했다. 그리고 <여태 만나온 사람의 아픔과 그래도 살게끔 한 꿈의 거리를 생각한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격을 생각한다> 시인은 소년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그 슬픔을 공감한다.

 

깊어 가는 이 가을 권정생 생가 뒤에 있는 빌뱅이 언덕에서 이 시집을 읽는다면 어땠을까.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자제하느라 올 가을은 안동 여행을 건너 뛴다. 늘 어긋나기만 했던 저렴한 내 인생이지만 이런 시집을 읽으며 호강을 한다. 문자를 깨우친 덕이다. 

 

이 시집에는 딱 50 편의 시가 실렸다. 그래서 시집이 다소 얇아 아쉽다. 그러나 시집 내용은 아주 묵직하다. 시인을 살게 한 슬픔의 무게,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의 무게, 그리고 그냥 살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참여 의식의 무게 등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